은하수 가을달

은하수 가을달

발에 걸리는 대로 신발을 꾀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벌써 가을인가 밤기운이 싸늘한데 휘엉청 밝은 달빛 아래 타운하우스 쓰레기통들이 나란, 나란, 마치 고택의 장항아리들처럼 줄지어 서있다. 달빛은 많은 것을 감싸주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의 추억을 헤집기도 한다. 습관처럼 떠들어본 우편함 속엔 소식은 없고 하얀 달빛만 소복하다.

아! 은하수 가을달. 초등학교 시절엔 습자시간이 일주일에 연이어 두 시간씩 있었다. 첫 시간엔 신문지나 허름한 종이에 연습을 하고 둘째 시간엔 정서를 해서 덜 마른 먹이 혹여 번지기라도 할까 칠판 밑에 주욱 늘어놓는다.

일찍 끝나는 아이들은 볕 좋은 창가에 모여 조용히 수다를 떨기도 하고 아직인 아이는 숨죽여 한 획씩 써내려간다. 어쩌다 먹물이 옷에 묻기라도 하면 밥알을 짓이겨 바르기도 하고 뒤 아이의 붓으로 등짝에 원치 않는 묵화가 그려지기라도 하면 작은 시비가 붙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창가 남자아이들 쪽에서 뱅글뱅글 누굴 항해 놀리는 듯한 웃음들을 웃는다. 한 아이가 은하수 가을달의 점을 안 찍어 ‘은히수 가을딜’이라 써서 칠판 아래 펴 놓았던 게다.

그 웃음들은 순식간에 번져 온 교실이 술렁이는데 나는 “어찜 좋아. 끝날 시간이 다되어가는데 저걸 언제 다 쓰냐?” 그때 그걸 알아차린 그 아이 (아이라지만 나보다 세 살이나 더 먹은 언니뻘이었다. 그 시절엔 전란으로 학령기를 놓친 애들이 서너 살씩 어린 우리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곤 했었다. 몽당 치마저고리를 자주 입고 체격도 크고 나중 생각해 보니 의젓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동급생으로서보다는 언니처럼 나를 챙겨주던 그 애) , 아무튼 그 애는 붓에 먹을 꾹꾹 묻혀들고 성큼성큼 칠판 쪽으로 가더니 “히”자에 점 하나, “딜”자에 점하나를 찍고는 주전자 두개쯤 걸 수 있게 입을 내밀고 양손을 털이개 털듯 흔들고, 또 양발로교실마루를 쾅쾅 구르며 제자리로 돌아오더니 책상에 엎디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의 입이 저렇게 튀어나올 수도 있고 또 교실에서 그렇게 크게 울어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그동안 어린 것들과 공부하면서 마음에 맺혔던, 또는 부끄럽기도 했던 그 어떤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올라온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 것은 아주 먼 훗날이었다. 나는 작은 손으로 너른 그녀의 저고리 등을 쓰다듬으며 창가 쪽의 머슴아들을 으쓱하는 기분으로 돌아보았다.

“늬들은 얘가 처음부터 다시 쓸 줄 알았지? 점 두개로 ‘은히수 가읕딜’을 은하수 가을달로 만드는 것 봤지?” 그날 그 애와 나는 키가엄청나게 큰 미루나무 꼭대기에 빨간 노을이 걸리고 참새들 수천마리가 노을 속에 작은 점으로 요동칠 때 아무도 없는 너른 운동장을 가로질러 늦은 귀가를 했었다. 슬픈 일을 치른 모녀지간처럼……

나이가 들면서 잠이 없어진다는 것은 지난 일들을 되새김질해보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 잘한 일들은 별로 떠오르지 않고 물수제비를 뜨듯 후회만이 튀어 오른다. 하지만 지나간 삶을 한 점으로 찍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예수님 부활하신 이 아침에 지나간 삶을, 또 돌아올 나의 생에 믿음, 소망,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점 하나씩을 허락해 주실 것을 간구해 본다. ‘은히 수 가을딜 ’의 혼돈을 은하수 가을달로 바꿀 수 있는 그 점들을.

이경자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