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과 운동화

자명종과 운동화

화가, 수학자, 발명가로 바빴던 레오나르 다빈치의 치명적인 약점은 아침잠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쁜 하루를 사는 그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는 아침잠은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생각다 못한 다빈치는 자명종 시계를 발명했습니다. 맞춰놓은 시간이 되면 소리만 울리는 자명종이 아닌 사람의 발을 막 흔들어 귀찮아서라도 일어나야 했던
시계였습니다.

자명종 시계가 골칫거리였던 고약한 아침잠 덕분에 태어났듯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아주 사소한 이유로 큰 성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창한 목표는 자칫 사람을 지치게하고, “반드시 이루어야 해”라는 굳은 각오가 오히려 그 길을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붙잡기도 합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 할머니가 대륙 횡단을 끝마쳤을 때 각지에서 취재 기자들은 그 나이에 무슨 목적으로 대륙을 걸어서 횡단했는지 할머니의 거창한 답변을 잔뜩 기대하며 몰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처음부터 대륙을 횡단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일흔의 나이에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대륙을 걷기 시작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손자가 선물로 준 운동화 때문이었습니다. 손자가 용돈을 모아 할머니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는데 그 운동화를 자랑하고 싶어서 ‘이걸 자랑하러 친구집까지 걸어가 볼까? 다리가 아프면 중간에 택시타면 되지뭐’ 이것이 아메리카 대륙 횡단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꼭 해내고 말거야” 라는 굳은 결심도 좋지만 “안 돼도 괜찮지만 최선은 다해 봐야지” 하는 느긋함과 여유를 갖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습니다. “가다가 힘들면 돌아가면 되지” 하는 할머니가 가졌던 편한 마음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무거운 각오는 자칫 출발부터 지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너무 굳은 의지와 결심은 자칫 자괴감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마지못해 오셨어도,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오늘만 오셨어도 좋습니다. ‘할 머니의 운동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 오지 않을텐데 하는 부담 가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냥 심심해서, 사정하니까 딱해서 오셨어도 괜찮습니다. 자명종 시계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연이 필연이 되고, 오늘 하루가 한달에 한번이 될 수 있고 평생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