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시죠?” “예”

“평안하시죠?” “예”

목사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대동소이 하지만 굳이 차별을 두자면 심방입니다. 한국상황에서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심방은 필수적입니다. 그렇다고 뉴질랜드는 필수적이 아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심방은 거의 무차별(저의 표현)입니다. 예고 없이 무조건 방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가면 싫어하시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뉴질랜드 상황에서 심방은 그렇지 않다는 데 한국과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는 많은 성도들이 생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예고 없이 방문하는 것은 큰 실례인 동시에 찾아가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맞춤형 방문(저의 표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몇 시에 찾아뵈려고 하는데 좋을지 확인하고 갑니다. 그리고 또한 저는 종종 전화로 심방합니다.

지난주 어떤 성도님께 전화로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셔서 예배드리는 날 외에는 많은 시간을 집에서 소일하고 계시는 성도님입니다. “별일 없으시죠?”,“예”, “평안하시죠?”, “예”,그리고는 다른 몇마디 말씀을 함께 나누고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불과 3분도 안 되는 짧은 대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도님이 제게 전화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흔히 하는 가벼운 인사치레의 말씀이아닌 마음 깊숙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목사가 성도에게 직접 찾아가는 것이 당연할진대 전화로 안부를 여쭙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감사를 연발하실까? 오히려 제가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 제게는 감동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지도 못하면서 수화기 너머의 말씀이지만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는 제게 큰 힘이 되었고 어줍은 목사의 전화지만 기다리는 성도들이 계심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하는 대림절입니다. 일일이 찾아뵙지는 못해도 전화로 진심 어린 용기와 덕담을 나누어보시면 어떨까요?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 주인에게 방을 원했을 때 여관 주인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배려했더라면 그는 천사들보다, 목자들보다 먼저 성탄 하신 아기 예수를 뵙는 감격이 있었을 텐데…,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약간만 배려하면 우리는 사망의 그늘에 앉아 지쳐있는 이웃들에게 소망과 삶의 의욕을 줄 수 있습니다.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