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의 항구에 도착해서

피안의 항구에 도착해서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에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고비를 만났는데 그때에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므로 내가 아내를 데리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 한잔하면서 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목표가 피안의 항구(소원의 항구) 라면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비행기로 가는 방법, 잘 포장된 도로를 멋진 승용차에, 귀로는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눈으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가는 방법도 있다. 지금 우리는 아주 힘들고 험난한 계곡에 뗏목을 타고 온 식구가 분초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방법으로 가고 있다. 마치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로버트 미첨와 마릴린 먼로가 성난 파도 같이 무섭게 흐르는 계곡의 물살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경험하고 온갖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자녀들과 같이 소원에 항구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은 멋진 차로 고속도로를 달려온 저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며 위로하곤 했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존재의 변화를 일으키는 위대한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며 위로를 주는 사랑의 언어다. 이사야 50장 4절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아멘. 우리는 어떤 형편과 처지 가운데 놓인다 할지라도 사랑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천사의 말을 하면 천사가 찾아오지만, 악마의 말을 하면 악마가 찾아온다. 따라서 생명의 언어는 하루를 빛나게 한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긴장과 갈등을 풀어준다. 힘을 실어주는 언어,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언어가 요즘 같이 어려울 때는 더욱 필요하다.

은혜만 축복이 아니요 시련도 축복이며 지나고 보면 고난처럼 보배로운 것도 없다. 혹독한 불 시험을 통과한 후의 보람과 상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 역경은 종종 변장한 축복이다. 우리는 순간을 사는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영원지향적이며 땅에 살면서도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순간을 살면서도 영원을 지향할 때 인간다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그 삶의 중심은 교회다. 교회는 천당 가는 대기실이다.

박제용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