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새벽기도회에 초대합니다.

한 주간 새벽기도회에 초대합니다.

지난 2010년 9월 한 월간지에서 기독교 저자 선호도에서 2위로 뽑힌 세계적인 영성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이 기도에 대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답하는 언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기도는 우리가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의 의미를 뒤집는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잠잠히 나아가는데 가장 방해꾼은 무엇이겠습니까? 피곤함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장소가 없어도 아닙니다. 누구 때문도 아닙니다. 바로 나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간절함, 절박함이 없는 나 자신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바라지 않은 것도 아니고 성취하고 싶은 기도 내용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간절함과 절박함이 없기에 한두 번 하다가 중단하거나 형식적이 되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또 하나는 분주함이 기도를 방해하는 주범입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그러나 분주함과 바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말 바쁜 사람은 계획이 없이 하루를 살지 않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가능한 time table에 따라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분주함은 time table이 없이 오지람 넓게 다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은 분주할 수밖에 없다는자기 합리화의 명분을 심리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끝으로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응답받은 체험이 없는 것입니다. 체험이 없으니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민만 할 뿐 기도하지 않습니다. 또 여태껏 기도하지 않아도 잘 살아왔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기도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지 않아도 살아왔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텃밭 속에 값진 진주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추나 깻잎 같은 푸성귀만 따 먹는 사람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한 주간 새벽기도회에 성도들을 초대합니다. 분주함을 물리치고 간절함과 절박함으로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을 체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디모데전서 4:7-8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개역성경)

이태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