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단기선교 후기

2019년 1월 30일(수), 올해도 어김없이 교회는 바누아투로 단기선교를 떠났습니다.  이태한 목사를 비롯한 장년 5명 청년 9명 환상의 비율인 14명의 멤버들이 출발 3시간전 공항에 모이기시작하여 분주히 탑승 준비를 했습니다. 1시간 남짓 참으로 어느 해 보다 수월하게 수속을 마치고 여러성도들의 기도와 수속이 너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배웅 왔다가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던 성도의 응원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점심을 맛있게 먹는 사이 비행기는 바누아투 포토빌라에 진입했고 열대지역 특유의 소낙비 환영을 시원하게 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해마다 통과하는 세관직원 중 한 둘은 우리를 알만한 데도 키보드 문제 삼더니 기어이 볼모로 통과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 유쾌하지 못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첫 방문지인 데오마 부시 지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산속으로 한참 들어가는 것이 꼭 숲 속을 파고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부시 지역에 잘 지어진 포포아 교회에 도착을 하니 Ann장로를 비롯하여 여러성도들이 차려놓은 저녁상 앞에서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반겼습니다. 전기가 없는 동네는 칠흙 같은 어두움 속으로 빠져들었고 새벽부터 설친 우리 일행은 도착 예배와 내일 일정을 잠시 점검한 후 취침에 들어갔습니다.

1월의 끝날인 둘 째날 , 우리는 더운 날씨라 호별 심방은 오전, 그리고 오후에는 팀 사역 이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3개조로 편성하여 호별 방문을 위해 출발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숲 속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집은 집이라기 보다 움막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로 우리 멤버들 중 처음 단기 선교에 참여한 지체들에게는 저으기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사람이 사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집을 찾았을 때는 정말 안타까운 광경에 망연자실 했습니다.   원두막처럼 생긴 움막 아래 네 아이들이 새끼 돼지들과 같이 어울려 흙장난을 하며 놀다가 낯선 이방인인 우리들을 보고 본인들이 놀라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우리 멤버 중 한 지체는 그들을 보며 이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고 다른 지체들도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먹먹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집을 방문 하여 예배를 드리는 시간보다 집을 찾아 걸어가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호별 방문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 누구도 덥다고 불평하는 이가 없었음은 집이라고하기에는 너무 허접한 곳을 집으로 알고 살아가는 그들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첫날 오전 사역을 마쳤습니다.

오후 사역은 교회를 중심으로 본당에서는 어린이 사역, 교회 밖 이쪽 끝에는 의료 사역, 저쪽 끝에는 장년 성경부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어린이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리더하는 지체에 눈을 떼지 못했고 오전에 호별 방문을 하면서 의료 사역에 대한 알림을 들어서 인지 약속된 시간 보다 먼저 와서 계면쩍은 미소를 띠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습은 아주 오래전 조선 땅을 찾은 선교사들에게 당신들의 아픔을 내 밀었던 우리네 조상들이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장년 성경공부는 영어로 진행 되었는데 의의로 영어를 모르는 성도들이 많아 그 중에 영어를 아는 분이 다시 바누아투어로 통역을 하는 식으로 진행하여 좀 어수선 하기는 했으나 말씀에 대한 열정은 우리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렇게 첫날 사역을 마무리 하며 우리는 모든 일정에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셋 째날, 여전히 날은 뜨거웠습니다. 어제처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호별 방문을 위해 출발하려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제와는 다른 지역을 가야 했으므로 길잡이가 필요했는데 어제 온 가이드(?) 중에 한 친구가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8살짜리 꼬마를 앞세워 출발을 했습니다.  길이라고하기엔 잡풀이 수북한 곳을 우리는 8살 아이가 가는대로 따라갔고 그 걸음은 길이 되어 갔습니다. 정오가 가까워 오면서 더위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팀원 중에 누군가가 “하나님 더워요” 하자 정말 놀랍게도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그런데 이 신비함은 호별 방문을 하는 동안 우리가 더위를 호소만 하면 구름이 해를 가려주는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느껴지는 호별방문이었습니다.

오후 사역 역시 어제처럼 세 분야로 나누어 실시를 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평가회를 하면서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보호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니는 길을 앞서 가시면서 구름으로 가리워 주시는 놀라운 은혜 속에 호별 방문을 마치실 수 있었다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창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교회 지붕을 요란하게 때리는 소리에 우리는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이 부족하여 샤워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내려 주시는 소낙비 소리였습니다. 그야말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비구름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하루였습니다.  

넷 째날, 이제는 일정에 대해 제법 팀원들이 익숙해졌습니다.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지 말입니다.  지나간 밤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린 탓인지 온통 진흙탕 길을 가야 했기에 신발은 모두 호별 심방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흙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영혼이라도 더 만나려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숲 속을 얼마나 걸어갔을까? 마치 화전민이 산을 개간 하듯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나중에 나이를 물어보니 40초반이었음) 여성이 맨 발로 무엇인가를 심고 있었습니다. 엷은 미소로 반기면서 우리가 왔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속에는 우리가 머무는 교회와 자신의 집이 너무 멀기에 찾아 오리라고 생각을 못했다는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주라는 단순한 진리를 전하고 기도한 후에 오후에 의료 진료가 있으니 오라고 하면서 작별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의 길을 안내한 8살 아이가 그만 길을 잃버버린 것입니다. 이제 교회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이 가이드는 어느 쪽이 교회로 가는 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가 얼마나 밖을 나가보지 않았으면 길을 모를까 하여 가엾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어쩔 줄 몰랐습니다.  아이를 달래고 나서야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웃었습니다.  

오후 사역이 시작되기전부터 원근각처에서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당료 체크와 혈압 그리고 침과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더위를 무릅쓰고 오신 분들입니다. 주식이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기에 대부분 당료 수치가 높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아픔은 자신의 건강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 체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섯 째날, 오늘이 첫 방문지인 데오마 부시 포포아 교회에서 마지막 날입니다. 가장 먼저 부산하게 움직인 팀원은 다은 자매였습니다. 우리 팀원 중에 인도자 목사님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바누아투에 온 지체인데 워낙 삼마 교회와 식구들을 좋아해서 삼마교회에  남자 친구가 있어서 그렇다고 놀림을 받는데 드디어 오늘 삼마로 출발하는 날이기에 아마도 잠을 설친 듯 했습니다. 주일이라 우리는 어느 날 보다 마음이 분주 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린 후 마을 잔치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포포아 교회는 우리 예배와 진행 순서가 좀 달랐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그룹별로 설교 내용을 가지고 토의를 하고 다시 예배를 드리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은 설교를 듣는 집중력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에 100명에 가까운 성도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교회 안은 그야 말로 찜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무도  자리를 떠거나 요동함이 없었습니다.  

예배 후에 성도들이 떠나기가 무섭게 우리는 마을 잔치 준비에 들어 갔습니다. 짜놓은 메뉴가 호떡과 라면이라 불이 있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텐데 열악한 취사 시설은 우리의 솜씨를 비웃는듯 제멋대로 였습니다. 그러나 더위와 싸워가며 호떡을 굽고 라면을 끓이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이병대, 심정미 집사님은 더위와 열기로 인해 온몸에 땀띠가 생기고 잔치가 끝난 후에 쓰러질 정도 였습니다. 드디어 잔치 시간이 되자 흩어졌던 교인들이 한사람 두 사람 모여 들면서 그들 역사 무엇인가를 분주히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작별 문화의 하나로 통돼지를 바나나 잎으로 싸서 돌로 구운 것이 었습니다. 우리 함께 만찬을 하며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와 함께 내년에도 또 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들었습니다.

삼마교회에서는 전화로 우리 팀이 몇 시에 도착하는지 물어 왔다고 앤 장로님이 귀 뜀을 해주었습니다. 떠나는 시간이 임박하면서 여기저기 작별 인사를 하느라 쉽게 차에 오르지 못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였습니다. 한 남자 성도님이 그만 펑펑 우는 것이었습니다. 남자가 그렇게 소리 내어 우는 것은 그리 흔하게 보지 못했는데 짧은 4일간의 만남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주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 된 자들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우리 팀원들 중에서도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때마침 쏟아지는 소나기로 인해 급히 차에 올랐고 어느새 정겹던 포포아 교회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삼마 빌리지를 가려면 포토빌라 시내를 거쳐야 하기에 우리는 전투를 앞둔 군인이 보급품과 전투 장비를 점검하는 것처럼 필요한 몇 가지 식품을 구입하며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다시 영적 전쟁을 치룰 준비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삼마 교회에 도착을 하니 부모형제 같은 친근한 얼굴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가족이 외국에 살면서 1년에 한번씩 꼬박꼬박 만날 수 있겠습니까? 2009년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찾는 삼마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쉼없이 찾아 옴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도착하자 마자 김병진 목사님, 이광희 장로님, 이태한 목사님은 톰 장로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10년전 처음 포토빌라 공항에서 만난 후 단기 선교를 갈 때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오던 분입니다. 영어와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텔리로 삼마교회의 중심인물인데 몇 년 전부터 당료로 고생하더니 그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여 외부 출입을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시더니 반가움과 서러움이 교차되는 양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우리 역시 가슴이 저미어 왔습니다. 만약에 뉴질랜드에 살았다면,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이 정도였을까?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을 안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6일째의 아침이 밝으면서10년째 찾은 노련미에서 나오는 여유일까요? 팀원들의 손 놀림은 그 어느때 보다도 너무도 재빠르게 맡은 사역을 준비하기에 바빴습니다. 삼마에서의 하루 일정이 포포아 부시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해마다 하는 호별 방문에서 우리가 수년 동안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들이 어떻게 응답되고 있을까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팀원 중 목사님과 몇 몇명은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 되어 있습니다.  호별 방문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탓인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들어가도 되느냐는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가 앉았습니다. 처음 삼마빌리지를 방문했을 때 초등 학생 혹은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10년의 시간 속에 청년으로 수도인 포토빌라로 직장을 나가는 이도 있고, 이미 시집을 가서 어머니가 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자연히 집에는 노부부만 사는 가정들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대부분 가난했지만 그들 속에는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자족함이 있었고 그 자족함은 우리 팀원들의 생각과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약이 되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다 가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들은 자족함을 배워야 했고 그들은 그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교회를 중심으로 의료 사역과 부서별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 가운데는 다리와 무릎 등에 넘어지거나 숲 속을 다니다가 가시에 찔렸지만 바른 연고가 없어 덧나고 곪은 체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연고하나 밴드 하나면 될 것을 그것이 없을뿐더러 있는 것 조차 모른 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인데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그들에 비해 특권과 특혜를 제한없이 받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장년들 가운데는 포포아 마을 사람들과 대동소이 당료 수치가 높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지난번에도 당요 검사를 하면서 높은 분들에게 주의 사항 및 식이요법(?) 비슷한 것을 일러주었는데 어쩌면 끼니조차 버거운 그들에게 그것은 배부른 사람들이 호강에 겨운 사치스러운 말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식생활과 의료 혜택이 최소한이라도 주어져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될까? 그날이 언제 올까? 참으로 착찹한 하루였습니다.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2019년 단기 선교 일정이 저물어가는 7일째, 정리를 해야하는 날입니다. 내일 아침 공항이 있는 포토빌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느 날 보다 좀 서둘렀습니다.  호별 방문은 태어날 때부터 기형으로 13살이 되었지만 말은커녕 누워만 지내는 에스더네 집에만 가기로 했습니다.  좁은 방안에 누워 눈만 껌벅껌벅 하다가 낯선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서자 인기척에 놀란 에스더는 울기 시작했고 목사님이 침을 놓자 울음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이내 잦아들었습니다. ‘차리리 에스더 야 더 크게 울어보아라 내 인생은 왜 이러냐고 하나님은 왜 이런 나를 세상에 보냈어요 대답 좀 해주세요 라고 더 크게 말이다.’  그래서 너의 13년의 답답함 조금이라도 가벼워 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마쳤습니다.  에스더 엄마는 그런 에스더를 보면서도 의사들이 말한 시간보다 에스더가 더 오래 살아 주어서 감사하다고 울먹였습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겠지요.    

오후가 되면서  마을 잔치를 준비하자 그들도 이제는 우리의 일정에 익숙해져 한 접시씩 십시일반 여기저기에서 가져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역시 이병대 , 심정미 집사님이 비닐하우수에 버금 가는 옛 교회당에서 호떡과 부침개를 만드느라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수고하였고 땅거미가 몰려오면서 불을 밝히고 우리는 서로를 축복하며 먹고 마시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떠나는 날, 마음 한 켠에 아픔으로 놓여져 있던 톰 장로님 생각이 났습니다. 절단된 다리로 인해 우리가 머무는 4일동안 한 번도 집밖을 나오지 못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교회가 어느 정도 지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하는 사역들을 얼마나 지켜보고 싶었을까? 팀원들이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우리 셋은 톰 장로를 찾았습니다. 아내로부터 우리가 떠난다는 것을 들은 그는 감사하다는 말로 우리를 맞았고 김병진 목사님의 침술 후에 그의 쾌유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선교 후기인 이 글을 정리하는 도중에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숙소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헤어짐은 늘 그렇듯이 여린 감정을 가진 몇 몇 지체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떠나 보내는 그들 또한 그들만의 말과 행동으로 슬픔을 삭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포아 마을에서 보다는 헤어짐의 안타까움이 약함은 그동안 쌓은 정이 충격을 흡수 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1년후면 또 볼 수 있다는 안도와 확신 때문일까요? 그렇게 우리는 God bless you 와 Peace be with you를 나누며 포토빌라로 향했습니다.

후기

우리 팀을 언저리에서 도와준 우리 pck교단 정성욱 선교사와 사모님 그리고 바누아투 장로교단 임원들을 중국식당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정 선교사님 부부는 바누아투에 온지 얼마 되지 않지만 참 많은 사역을 했고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단 다락방이 바누아투에 침투하려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바누아트 장로교단 임원들을 포습 하려는 것을 막고 바누아투 장로교단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함으로 다락방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큰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을 통해 오직 복음만이 전파 되기를 그리고 바누아투 장로교에 다락방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소망하며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선교를 통해 두 교회를 섬기게 해주신 예수님, 모든 팀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오게 인도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후원과 기도로 동력 하도록 역사하신 성령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리며 성도들에게 그 고마움을 전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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