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배경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이 결정되어 집니다. 그렇다고 가치의 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가치 있는 것은 버리고 무가치한 것을 취하는가 하면, 무가치한 것을 버리고 가치 있는 것을 취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 사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생명이 보석보다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합니다. 그래서 보석과 생명을 바꿀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석이라 할 수 있는 재물을 소유하기 위해 삶을 허비합니다. 물론 재물을 모으는 것이 평안한 일생을 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재물을 쌓기 위해 그 귀중한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건축자들(당시의 종교인들)이 버린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돌(예수그리스도)을 성전 모통이의 머릿돌을 삼으셨습니다. 머릿돌이란 건축에서 그 돌을 기초로 높이와 넓이 길이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그러니까 머릿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여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무결한 구원의 머릿돌이 되시기에 충분합니다.
구원을 얻으려는 종교인들이(물론 그들은 영적인 구원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을 주시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외면한 것은 무가치한 것을 취하기 위하여 가치 있는 것을 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이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말세에는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추구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을 추구하고, 섬김은 없고 섬김만 받으려는, 현대에 들어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나타나는 정확한 예언이다.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로마서 3:10) 하나님 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없이는 절대로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진리 앞에 사람은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가치한 것을 취하려고 가치 있는 것을 버렸던 종교인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을 취하려고 구원의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분명한 죄인이기에 속죄의 구원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가치 임을 말입니다.
이태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