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엄마 우리 애들 좀 부탁해요, 내일 오후 늦게 돌아올 것 같아서요. 먹이는 냉장고에 뒀어요.” 산책하고 돌아오니 급하게 쓴 메모가 냉장고 문에 붙어있다. 그 아이들은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속에 열심히 스완 플랜트 잎들을 갉아 먹고 있다.

나비 애벌레들이다. 크고 작은 녀석들이 족히 십여 마리는 넘는 것 같다. 큰 녀석들은 지금 한창 먹을 때인데, 이 먹이 가지고 될까 몰라 하면서 먹이를 부추 간수하듯 도르르 신문지에 말아서 비닐 봉투에 담아 야채칸에 넣어둔다.

딸아이와 나는 몇 년 전부터 나비를 길러 날려보낸다. 나비들은 봄이 되면 날아와 스완 플랜트 잎 뒤쪽에 좁쌀알보다 더 작은 알들을 여기저기 붙여놓고 날아가 버린다. 옹색한 뒤뜰 구석에 있는 작고 볼품없는 나무를 용케도 찾아온다. 며칠 후면 잘 보이지도 않는 애벌레들이 알에서 깨어나 제가 나온 알껍데기로 영양을 섭취하고, 성충이 될 때까지 그 나뭇잎을 먹고 자란다. 흰 줄과 검은 줄이 바코드처럼 생긴 애벌레들은 5~6cm까지 자라게 된다.

말벌 등 천적들이 이들을 해치기 시작하는데 내가 애벌레를 격리시켜 잎사귀를 뜯어 먹이며 키우기 시작한 것도 애벌레가 사마귀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것을 보고 난 어느 날 이후였지 싶다. 애벌레는 자라며 4~5번의 허물을 벗는다. 그땐 잘 움직이지 않고 또 먹지도 않는다.

야생에선 백 개의 알 중 겨우 두 마리 만이 나비가 된다는데 오늘은 늦둥이로 낳아 놓고 간 올해의 마지막 나비 다섯 마리가 거의 비슷한 시간에 번데기에서 깨어났다. 꼭 끼는 원피스 뒷 지퍼를 열듯, 금빛 띠를 두른 고운 연둣빛 번데기에서 어렵게 벗어난 나비는 모양도 색깔도 분명하고 건강한 호랑나비다. 빨랫줄에 널려있는 하얀 침대 시트에 붙여놓고 구겨진 날개가 펴지고 마를 때까지 나는 주변을 서성인다. 천천히 접었다 펴는 날갯짓에 성긴 초가을 햇볕이 잘게 흩어진다.

얼마후 한 마리씩 푸른 하늘 속으로 한 점이 되어 떠나간다. 그 미물의 비상 앞에 언제나 그렇듯 가슴이 벅차오르며 따라 날아오르고 싶어진다. 먹이사슬의 끝자리에서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사랑받는 나비. 꿈틀대는 애벌레의 촉감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나비가 된다는 믿음이 나를 그렇게 하게 만든다.

스스로 앞에서 깨어나고 몇 번이고 허물을 벗는 애벌레, 명주 올보다 더 가는 실을 입에서 뽑아 스스로 실족지 않게 지탱하는 지혜가, 더 높은 곳을 찾아 번데기로 매달리는 나비, 화려한 비상 그들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그 오묘한 섭리 앞에 때론 숙연해지기도 한다.

많은 죄와 허물에서 깨어나지도 못하면서 나비가 푸른 하늘을 날듯,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나. 그래도 나비를 키워 날려보내는 마음의 여유가, 또 이국에서의 내 노년의 삶이 그렇게 강퍅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이경자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