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미리암 메켈(Miriam Meckel), 출판사: 로그인
“폰좀 그만 끼고 살아” 집사람이 딸에게 한마디 한다. 그리고는 숨돌릴 틈도 없이 나를 쳐다보며 왈. “당신도 마찬가지” 나는 설교 시간에 메일 확인하다가 들킨마냥 움찔 그 자체다.
전에는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로그온 시켰는데 이제는 수초도 기다릴 필요없는 스마트폰으로 가장 먼저, 그것도 저절로 손이 간다. 한국 기준으로 2011년 10월 28일자로 스마트 폰 가입자가 2천만을 넘었으니 약 5년 후인 지금은 오죽할까? 2009년 스마트폰이 보급되었을 때 그해 한해만 47만명이 가입했다. 엄청난 속도다.
칼리지 학생은 물론 스마트 폰을 들고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그러나 빠른 것이 힘, 속도가 곧 능력으로 간주되는 세상에 과감히 그것을 거부하며 아날로그가 힘이고, 느린 것이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외치는 책이 있다. 스위스 생 갈렌 대학 미리암 메켈 교수가 쓴 ‘느리게 가기’ 가 그것이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한해 동안 이 코너를 맡겠다고 할 때 신앙의 편식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신앙서적과 일반서적을 번갈아 소개하겠다는 약속을 지면으로 했었다. 그런데 1,2월 모두 신앙서적을 소개했다. 이번엔 일반서적을 소개해야 겠다는 뭔가모를 중압감을 느꼈다. 그리고 ‘느리게 가기’는 그 중압감을 내려놓게 한 일등공신이다.
저자인 메켈 교수는 책에서 여성답게 아주 섬세하게 온갖 기기에 물들어 가는 현대의 디지털 보헤미안 (사회 관습에 구애 받지 않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자유 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들에게 따뜻한 치유의 메세지와 함께 기꺼운 마음으로 충고하고 있다.
비교적 짧은 3장으로 구성된 책은 첫장에서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를 소개한다. “우리는 모두 지물탄트다. ”에서 ‘지물탄트(Simultant)’가 그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바쁜 현대인을 풍자한 신조어”로 현대인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무절제에 과도하게 함몰되어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장은 “통신의 물결에 휩쓸린 우리들”이다. 타이틀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있듯이 저자는 현대인들을 통신매체를 따라기기에 급급한 존재로 묘사하여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가련한 인간인 시시포스에 비유하고 있다. 불경죄를 저지른 시시포스는 언덕 위로 거대한 바위를 영원토록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바위를 꼭대기에 밀어 올리면 그 바윗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그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처량한 인생이다. 현대인들을 숨이 막힐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통신물결(바윗돌)을 쫓아가기에 허덕이는 존재로 묘사한다.
셋째장은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아서”이다. 스마트폰, 인터넷, 통신매체에 휩쓸린 현대인들에게 탈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그 탈출구가 너무나 의외다. 미국의 어느 수족관 안내판에 적힌 한 문장을 인용하는데 “부유는 대양을 여행하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다” 망망대해를 유유자적하는 해파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해파리들은 결코 쫒기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생명의 원소인 물위에 천천히 우아하게 떠있다. 느리게 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속도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믿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역설인가?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발상이다.
현대인들은 잠시도 누군가와 단절되지 못하고, 혼자 되지 않으려고 핸드폰, 메일, 메신저, 통신기기에 길들여진 삶을 살아가는, 스스로를 디지털 문명에 볼모로 묶어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아닌가? 그래서 저자는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책의 부제를 달고 있다.
과도한 디지털 문명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위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온라인 안식일을 매주 지켜온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윌리엄 파워즈는 일주일의 하루는 집안의 인터넷 선을 뽑는다고 한다.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가족들간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덕분에 가족간의 소중한 인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빠른 것이 무조건 미덕은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빠르지 않으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인생까지도 뒤처지는 조바심증에 걸린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세상은 가히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그 속도 만큼 우리 세상이 스마트 해 졌는가? 여기에 누가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짙어가는 가을볕속에서 한번쯤은 정독하며 속도에 속절없이 속아가는 속임수에서 나를 탈출시킬 수 있는 양서가 ‘느리게 가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