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데이비드 플랫(Davit Platt) 출판사: 두란노서원
이번 북 리뷰에서는 좀 유식한척 해보고 싶다. ‘쥐어 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 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진이 2011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신조어다.
이 말은 영국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가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물가 상승과 임금 동결 등으로 양쪽에서 쥐어 짜여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간 이하 소득 계층을 지칭하며 처음 사용한 말이다.
생뚝맞게 왠 유식한척 하겠지만, 오늘날 교회가 바로 ‘쥐어 짜인 교회’ 라는 생각 때문이다. 현대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한지는 이미 오래다. 아니, 환영은 커녕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안티 기독교인들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음에도 교회는 속수무책이다.
목회자들의 신뢰도는 점점 가라 앉고 있다. 교회를 떠나는 종교인들의 발소리는 잦아지고 덩달아, 잠재적 교인들은 아예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교회의 권위는 무너졌다. 너무 비약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무너지다 못해 아예 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외부에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회 내부는 또 어떠한가? 제도적인 교회의 부분적인 연약함을 침소봉대 하여 기성 교회의 모든 부분이 틀렸다고 싸잡아 비난하며 자신들의 사고방식이 가장 기독교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모를 ‘그들만의’ 집단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스스로를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는 그렇듯한 자부심으로 교회출석을 사양하는 ‘안방교인’ 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도무지 교회는 양쪽에서 쥐어 짜여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이 쥐어 짜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안을 ‘래디컬’이라는 책이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 앨리버마 주 버밍햄에 소재한 브룩힐스 교회의 담임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이다. 래디컬이란 급진적이라는 뜻이다. 한때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기도 한 이 과격한(?) 단어를 거룩한 교회에 사용한 37살 먹은 젊은 목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 젊은 목사가 굳이 래디컬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만큼 ‘쥐어 짜인 교회’를 회복시키려는 열정과 고뇌가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는 래디컬이라는 말의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쥐어 짜인 교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시도해야하는 도전과 모험을 촉구하고 나섰다.
무엇을 시도해야 할 것인가? 아이러니 하게도 진짜 기독교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뜻밖이지 않는가? 그럼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믿었으며 우리의 신앙은 진짜가 아니었는가? 자못 궁금해진다.
저자 역시 ‘쥐어 짜인 교회’의 세계에서 살다가 중국의 지하 교회를 접하면서 진짜 기독교를 보게 된다. 제자 훈련, 교회 성장을 위한 노력들, 훌륭한 프로그램, 크고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지었을 지라도 그 중심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 형식적이고 정형화 된 종교가 ‘쥐어 짜인 교회’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진짜를 본 그는 남의 일인냥 강건너 불구경 하지 않고 진짜 기독교를 시도했다.
그 시도가 믿음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 교회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오직 주의 일만 하는것, 자기 중심적인 신앙함에서 이웃중심의 신앙함을 시도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 없는 말만 비단 옷같이 하는 종교인에서 진짜 예수쟁이의 길을 시도했다.
영국의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였던 체스터턴은 “기독교는 시도된 적도 부족함이 드러난 적도 없다. 다만 어렵다고 여겨서 시도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대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체스터턴의 말을 인용하여 “세상은 한 번도 기독교를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말들은 많이 했지만 기독교를 진정으로 시도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지금 기독교(교회)가 여전히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쥐어 짜인 교회’ 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이 책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솔류션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스도인들이여 교회 안에서 진짜 기독교를 시도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