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8복의 첫 시작은 이러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얼마 전 하나님 은혜로 셋째를 출산하고 어떻게 아이의 이름을 지을까 하고 고심했던 적이 있 었습니다. 첫째와 둘째 아이 때보다 오랜 고민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시금 아이의 이름을 지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가난’ 이라는 한자어 ‘빈(貧)’ 자였습니다. 참고로 첫째와 둘째 아이도 ’빈’ 자를 썼지요.
그 와중에 알게 된 사람이 일본의 현대 예술가이며 서예가였던 이노우에 유이치입니다. “30년에 걸쳐 쓴 ‘가난할 빈( 貧)’ 자는 가난하지만, 가난에 꺾이지 않기 위해 쓴 글씨로 질박하며 과장되지 않게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을 빈이라 한다.
‘산다는 것은 쓰는 것’ 그는 칠십 평생을 이 한마디에 목숨 걸고 살았다.” 무언가를 평생토록 반복해서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몸으로 보여준 한 사람의 외침이었습니다. 딸 아이의 이름을 지으며 다시금 깨닫게 되는 건 반복되는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사랑에는 반복하 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석봉과 그 어머니의 일화를 접해보 지 않으신 분은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절에서 공부한 지 수년이 흐르면서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은 한호는 몰래 절을 빠져 나와 집으로 찾아왔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말없이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 오게 한 뒤 자신은 칼로 떡을 썰고 한호에게는 붓글씨를 쓰게 하였다.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크기나 두께가 모두 똑같아 보기가 좋았는데, 한호가 쓴 글씨는 서로 제 각각 모양이 비뚤비뚤하여 보기가 흉했다. 어머니는 한호를 크게 꾸짖으며 글씨를 고르게 쓸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집에 올 생각 말라며 한호를 다시 돌려보내 글씨 공부에 매진케 하여 당대의 명필이 되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반복의 시간, 떡썰기의 그 지루하고도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아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어머니의 삶 가운데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사랑은 쉼없는 반복의 과정을 이겨내는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본받고 싶은 유진 피터슨이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쓴 책 중에 ‘한길 가는 순례자’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는 유명한 무신론자였던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 서 시편 120-134편의 성전 순례 시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우리 몸으로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그분의 생명이라는 선물에 따라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로 가득찬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예수님이 그리고 그분의 생명이라는 선물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성경을 천천히, 상 상력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종적으로 읽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그 동안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그러하였는지… 사랑은 힘들고 어렵지만, 또 반복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 사랑의 반복 속에 평생토록 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심창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