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성인만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은 놀라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케한 시작이 있으니 작은 어린 아이입니다. 성경에는 그 아이가 몇살인지 침묵하고 있으며 다만 “한 아이” (누가복음6:9)라고 기록할 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아이는 자신의 점심 도시락이 그토록 놀라운 역사를 가져 올것이라고 믿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의 생각도 모르면서 그 아이의 믿음(?)을 폄하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이 이 아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상식과 믿음을 많이 혼동하고 여과 없이 인식할 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제자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건네준 것은 상식이었지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내 점심을 내어 놓으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 먹고도 많은 음식이 남을 것이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도 아이처럼 상식선에서 그치는 신앙의 행위를 많이 하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즉 우리는 믿음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나 기적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겨자씨 같은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용하는 그곳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상식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아는 상식을 믿을 때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천년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는 사실은 상식입니다. 이 상식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는 이 상식을 믿음으로 인정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식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식이 믿음이 될수 있는 것은 아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입니다.
상식이 믿음이냐, 아니냐를 알수 있는 시금석은 그 상식이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오느냐, 가져오지 않느냐를 통해 알수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상식을 알면 말씀의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면 왜 창조를 하셨을까? 묵상하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식에서 믿음으로 진 일보 하는 것입니다. 상식을 믿음으로 오해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상식은 상식일뿐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상식이 될 때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있습니다.
이태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