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모함으로 옥살이를 치르고 백의종군 했으나 원균이 왜군에게 크게 패배하는 바람에 다시 지휘봉을 잡게 되었고 선조 임금은 이순신 장군에게 조선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편입해 싸우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상유십이” 즉,“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고 신하(이순신)가 죽지 않았다”는 장개(狀啓)를 올렸습니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남아 있던 12척의 배로 적의 배 133척을‘명량해전’에서 물리치게 되는, 역사에 길이 남는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더욱이 이민자의 삶이라 한국에 있을 때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작은 일에도 신경이 곤두세워지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각박한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들입니다.
그 아우성들 속에 내 자신도 포함이 되면서 나는 각박한 세상을 만드는데 전혀 기여한 공로가(?) 없고 나는 그저 피해자고 남들에 의해서 지금의 내 현실이 이렇다고, 내 인생에 굴곡이 생겼다고 넋두리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있는 것에서 여유와 아름다움을 찾아 보면 어떨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볼려고 몸부림치기 보다는 보이는 것에 미소를 지으며 소망을 품어 보면 어떠할까요? 가지지 못했다고 열등감과 억울함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만족으로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이 지금보다 더 윤기 나는 인생을살 수 있지 않을까요? 내게는 적어도 12가지는 더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셈을 하여 봅시다. 12가지가 아니라 122가지도 될 것입니다. 내 인생에12 가지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 있을까요? 만약 더 필요한 것이 있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이요, 이기심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대부분 현세적이요 물질적인 것이기에 상유십이의 신앙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세적이요, 물질적인 것이 필요없고 그래서 부정하 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6:25 이하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셨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누구 보다도 이 상유십이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으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영국의 G.A. 발라드라는 사람은 “영국 사람으로서는 넬슨 제독과 어깨를 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번도 패한 일이 없는 위대한 동양의 해군 사령관, 이순신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상유십이의 신앙을 가진다면 이순신 장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역사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요한1서 5장4절에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태한목사, 2011년 6월 19일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