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 때면 모든 선남 선녀들이 덧 없이 가버린 한 해의 아쉬움 내지 후회에 대한 반대 급부로 새로운 소망과 꿈을 계획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결코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비전을 세우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이 구체적이지는 않는 다 해도 수첩 한 가운데 깊숙히 꽂아두곤 합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 문제입니다.
그 이유가 여러가지지만 비전과 야망을 혼동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 비전과 야망을 어떻게 구분 할 수 있습니까? 김춘근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망은 내 자신으로 부터 나오고 내 중심적이며, 내 자신이 동기부여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망이 이루어지면 결국 내 자신이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 중심이며, 하나님을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어 동기 부여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전이 이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시고 비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임을 일컬음 받게 됩니다.
일본 메이지 시대 때 홋가이도를 개발의 요청을 받아 당시 세계적인 과학자며 식물학자였던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오게 되는데 그는 삿포로에 농림 학교를 세우고 초대 교장이 됩니다. 임무를 마치고 떠나면서 일본 학생들에게 한말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였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 문장뒤에는 In Christ라는 말이 더 있었습니다.
야망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질 때는 비전이 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주위 사람들을 눈물나게 하는 욕심에 불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이 학교 출신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그는 야망을 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비전이 없었기에 우리 한국을 침략의 대상으로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야망은 나라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비전과 야망, 비슷한 말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모두 미래를 지향하는 언어지만 그 동기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꿈만이 곧 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새해에 어떤 꿈을 세우셨습니까? 우리는 지금 야망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비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