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발이 작아서 신발이 참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언니와 오빠가 광주와 목포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이 되어 고향에 올 때면 늘 저에게 신발을 선물로 사왔습니다. 그 시절엔 고무신이 최고였는데 저는 이 신발을 발이 큰 동생이 신어서 늘어날까봐 걱정되어 동생이 찾지 못하도록 숨기기도 하고, 잠 잘 때면 품에 앉고 신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다가 잠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모깃불을 피어놓고 옥수수와 감자를 삶고 텃밭에서 을영감(토마토) 한소반을 따다가 온가족이 마루에 앉아 먹으며 아버지의 아코디온과 하모니카 연주에 오빠가 사온 신발을 신고 재롱을 부리며 춤추던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묻혀 살다보니 어릴적 신발에 대한 추억은 내 삶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아련해졌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앞만 보며 살았습니다. 특히 예수를 믿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발버둥을 쳤고 예수님을 몰라도 잘 살 수 있다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자부심 하나로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 앞에 굴복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인하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고, 세상에 대한 미련 또한 너무 컸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주님께 눈물로 애원 했지만 저는 이미 주님의 손에 꽉 잡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녀로 살수 밖에 없는 현실에 점점 감사가 나왔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과 감사와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저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에덴 동산의 생명수와 실과를 먹고 마시며 이른 비와 늦은 비에 감사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우연히 성경을 읽다가 어릴 적 신발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발은 어릴 적 기뻐하던 그 신발이 아니었습니다. 벗어야 할 신발이었습니다(출3:5). 이 말씀은 모세에게 만 하신 말씀이 아닌 여호수아에게도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수5:15).
우리도 벗어야 할 옛 사람과 옛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위선의 신발, 교만의 신발, 인본주의의 신발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벗기 싫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벗어버리기에는 많은 시간과 기도가 필요하겠지만 벗어버리려고 애를 쓰겠습니다.
모세는 이 신발을 벗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내가 벗어야 할 신발이 무엇인지 기도하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깨닫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신어야 할 신발에 대해서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6:15) 라는 말씀입니다. 벗어야 할 신발인지 신어야 할 신발인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기도로,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어야 할 신발은 하나님의 능력의 복음의 신발이라고 믿습니다.
김순자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