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일정이 복잡한 하루가 있었습니다. 오전엔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오후엔 회사에 들렸다가 다시 볼일을 보러 나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갔다가 바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컨퍼런스 내내 종이와 펜이 아닌 핸드폰으로 필기한 것이 화근이 되어 핸드폰의 배터리가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드라마틱 하게 줄어드는 배터리 잔량에 이 기능 저 기능을 끄면서 버텼지만 결국 컨퍼런스 장소에서 나오는 길에 핸드폰 전원이 완전히 나가버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회사로 돌아가는 버스 노선을 미리 검색했기 때문에 일단 근처의 정류장까지는 가는 것은 수월 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기다려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질 않았습니다. 마침 정류장이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건너편에선 실시간 전광판에 노선 정보나 시간표가 더덕더덕 붙어있는데 이쪽엔 딸랑 ‘임시 정류장’ 표지판만 하나 붙어있었습니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30분이 조금 넘는 거리라 그냥 걸어갈까 고민해봤지만 이내 하늘까지 흐려지기 시작해 하는 수없이 계속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핸드폰이 무용지물 상태라 도대체 지금이 몇 시인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언제 버스가 오는지 무엇 하나 알 수 없게 된 것이 말로 다할 수 없이 불편하고 답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있건 없건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고, 분명 버스도 똑같은 시간에 도착했을 텐데,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핸드폰 배터리와 우리의 영적 건강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외출할 때 핸드폰을 잘 충전해서 나오지 않으면 똑같은 기다림의 과정이라도 괜히 몇 배나 느리게, 또 몇 배나 고생스럽게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매일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와 공동체의 사귐으로 영적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지 않으면 같은 일을 겪더라도 괜히 더 힘들고 더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것은 충전기는 두고 나오면 끝이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기도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핸드폰을 충전기에 연결하니, 꺼지기 전 화면이 어두워지고 버벅거리고 본체가 뜨거워졌었던 그 모든 증상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다시 멀쩡해졌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답답하고 불확실한 상황들 속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하나님께 잘 연결되어 있는지 살피는 것이 진짜 모든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혜윤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