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동무

책동무

나에게는 몇 명의 책동무들이 있다. 서로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이들에게 내가 붙인 이름이다. 뭐 그렇게 대단한 모임도 아니기에 그렇게 불리우는 것을 아는 동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다. 이나라에 살다 보니 우리 글로 쓰여 있는 책들이 귀하기도 하고 남편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바깥나들이의 운신 폭이 좁아진 나는 읽을 수 있는 책이 주어지면 폭식하듯 책에 빠지게 된다. 때로 몇 사람 건너건너 와서 급하게 지나가는 책은 늦은 밤까지 읽기도 하고, 가로등이 제풀에 꺼지고 큰길에 차 지나가는 소리가 바빠지기 시작할 때까지 책을 보기도 한다 .

푸릇한 신새벽 동그마니 앉아 연인들의 이별에 가슴 먹먹해하고, 때론 어항 속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듯 객관적이 되는 때도 있지만, 불치병이나 육체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내용을 접할 때는 남편 때문일까, 글줄이 물결치듯 번져 보이기도 한다. 잠은 좀 모자라지만 아침 일찍 학교 갈 아이가 없으니 도시락 쌀 걱정도 없고 출근할 것도 아니니 짧은 낮잠으로 낮에 조절하면 큰 지장은 없다. 다른 동무들은 자기 일에, 아니면 아이들 뒷바라지 때문에 바쁘다. 그러다 보니 제일 나이 많은 내가 책의 오고 감을 탁상용 달력에 써서 기억하면서 사서 아닌 사서 노릇을 하게 됐다.

몇 주 전 주일 예배 후 교제실에서 빌렸던 책을 돌려주는데 J 집사 “저는 못 가져왔어요. 다 못 읽어서.” 급할 것도 없고 아무래도 할 일 없는(?) 나보단 회수가 더디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그 뒷말이 나를 잡는다 . “고난주간이라서 … ” 순간 숨이 멈추 는듯 얼굴이 홧홧하면서 머릿 속 어딘가에서 묶였던 매듭이 툭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날달걀이 도르르 굴러떨어져 팍 터지는 그런 느낌? 다음 순간 내가 J 집사에게 어떤 책을 돌렸었나, 나는 과연 고난주간을 염두에 두고 지내기는 했었는가? 급하게 머릿 속을 뒤적였었다.

얼마 전 새롭게 개편된 성경책을 선물로 받았다. 전에보던 성경책도 아직 시루떡인데… 여기서 시루떡이라 함은 모든 책은 모름지기 손때가 묻고 갈피를 넘길 때 화르르 한장씩 넘어가야 하며, 헐면 헐수록 책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면서도, 아직도 갈피가 뭉텅뭉텅 시루떡 떨어지듯 한다는 말이다.

전에 어느 목사님, 무릇 신앙인이라면 성경을 자기 나이 수만큼은 읽어야 된다고 설교하시던데 내 수명을 팔십으로 친다면 남은 여생 동안 일 년에 4-5독은 해야만 나 스스로 성경통독의 나잇값을 하는 셈이다. 사람이 지은 얘기에 잠을 설치고 희뿌윰한 새벽을 맞기도 하면서 태초부터 나를 위해 계획하시고, 나를 위해 낮은 곳으로 오시고, 나로 인해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또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그분의 말씀을 즐겨 찾지 않는 나 한 뼘의 얼굴이 둘 곳을 못 찾는다.

하지만 나는 기도한다. 먼 훗날, 설핏 기우는 저녁노을에 창살 그림자 거실바닥에 내려앉을 때 빛깔 고운 무릎담요조차도 버거워 보이는 하얀서리 머리에인 작은 노인이 있다. 콧등에 걸쳐진 돋보기 아래 조글조글 주름 많고 작아진 손으로 받쳐 든 성경책. 금빛 갈피도 닳아 퇴색되고, 화르르 넘어가는 장장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밑줄이 보이고 가끔은 회한과 감사의 눈물로 얼룩진 낡은 성경책을 받쳐 든… 그 노인이 나이기를… 붉은 노을이 창살 그림자조차 거두어 안고 서산으로 넘어간다. 살포시 잠들어 안고 있던 성경책 떨어지는 소리에 무릎담요 끝에 코 박고 잠들었던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게으르게 눈떠 올려다보고는 무심히 돌아눕는다. 깜빡 잠이어도, 아니 영원한 잠이어도 좋겠다. 그 노인이 나이기를…

이경자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