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와 구색 맞추기

스시를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스시 샵을 직접 운영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냥 직원으로 일하시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나중에 혹(?) 스시 샵을 직접 경영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배워두면 좋을 듯싶어서 나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바쁘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를 사는 사람 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특히 스시 샵 그것도 Mall 같은 곳에서 7day를 하시는 분들은 정말 주일을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다는 것입니다.

간혹 교회 주변에서 스시 샵을 운영하는 성도들을 찾아갈 때가 있습니다. 스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날은 아침도 조금 먹고 점심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무실에 있다가 가곤 합니다. 반가이 맞이하는 성도는 “점심 드시지 않았죠?” 묻습니다. 그럴 때면 시치미 뚝 떼고 “먹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곧이듣고 스시를 주시지 않는 날이면 그날은 배를 쫄쫄 곯고 옵니다. 물론 그런 날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왕이면 안부도 묻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오려고 일부러 손님이 뜸할, 주로 바쁜 시간을 피해서 가는데 목사의 심리가 참 묘함을 느낍니다.

막상 가서 손님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그 성도와 함께 이야기할 여유가 없고 얼굴조차 마주 대할 시간이 없어도 손님이 많이 있는 것이 흐뭇합니다. 반대로 손님이 없을 시간, 그래도 하루 중 한가할 시간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갔음에도 그 기대대로 샵이 한산하면 정작 마음이 짠하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사업엔 젬병인 목사가 “집사님, 웬 스시 종류가 이렇게 많습니까? 이렇게 수십 가지를 만들어야 합니까?

손님들이 선호하는 몇 가지만 만들면 시간도, 인력도 절약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아는 척했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은 “목사님 아닙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런 것 같은데 구색을 갖추어놓아야 합니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찾는 단 한 종류의 스시라 해도 구색을 맞추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구색 맞추기는 꼭 장사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앙에도 분명히 구색 맞추기 신앙이 있지 않을까요? 별로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없으면 뭔가 심리적으로 허전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신앙이라면 분명히 구색 맞추기 신앙입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만든 스시는 결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즐겨먹는 위치에 두지 않습니다. 한쪽 구석, 약간은 외진 곳이나 다른 스시 다 진열하고 공간이 남는 아무 곳에나 놓아두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구색 맞추기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중심에 잘 두지 않습니다. 또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 놓은 스시는 그것만 먹는 사람이 아니면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듯이 구색 맞추기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스시는 많이 만들지 않기에 만들 때마다 어색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색 맞추기 신앙은 하나님신앙을 삶 속에서 적용하기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신앙화 되기 어렵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구색 맞추기로 간주하면 하나님 역시 나를 구색 맞추기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을 스시 샵에서 깨닫습니다. 다음 주쯤 스시 샵에서 구색 맞추기 스시를 다 먹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구색 맞추기 신앙인이 없어진다면 말입니다.

2011년 9월 4일 이태한목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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