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해답

교회의 기능에는 예배와 교육과 선교, 그리고 교제와 섬김이 있습니다. 이 기능들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사회적 역할과 예언적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역할은 교회로 하여금 그 지역 안에서 행해지는 사역들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 구제,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여 바른 소리를 낸다든가 교회를 개방하여 유치원을 운영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결혼식 혹은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언적 역할은 세상과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십자가와 천국을 선포하며, 소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두 역할 중 사회적 기능만 강조하면 교회가 자선단체나 사회사업을 하는 공공기관으로 전락하는 예수님 시대의 회당이 될 것이고 예언적 역할만 강조하면 ‘당신들의 교회’로 간주되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결국, 교회가 어느 한 가지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를 단순히 사회적 역할만 하는 곳으로만 알아가고 있고 또 그것만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인들조차도 교회가 사회적 기능에 힘을 쏟는 것을 더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그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으로 인식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작금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 환대를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가 사회적 기능을 잘 감당하지 못해가 아니라 너무 이 역할을 하다 보니 교회를 단지 자원봉사나 자선단체로 인식하여 더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공공기관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게 될 수 없거니와 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영적인 기관으로 예언적 역할을 다해야 교회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상과 사람들의 죄를 선포하여 인간들의 현주소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의인이 악인을 정죄하듯이 다그치거나 지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병이 들었는데 그 병을 고치려면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하듯 그 병원이 오직 교회라는 인식을 하도록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은 아무리 불치병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혈로 치료가 될 수 있으며 고침을 받은 후에는 천국이라는 상급이 주어진다는 소망을 함께 선포해야 합니다. 병이 치료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완전하며 의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마치 의사도 병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허물이 있어도 예언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두 가지 기능 중에서 무엇이 우선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언적 역할을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역할은 부수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부수적이라고 해서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는 교회의 기능입니다. 그럼에도 예언적 역할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게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가 구제 대상에서 자주 빠지자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12 사도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예언적 역할)을 제쳐놓고 구제(사회적 역할)하는 치중하는 것은 본질에서 어긋난 것이니 구제 사역을 할 사람들을 선택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대립이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교회 본래의 기능인 예언적 역할로 돌아가기 위한 사도들의 선언입니다.

예언적 역할을 하지 않는 교회는 자선단체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비록 세상으로부터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욕을 먹어도 예언적 기능을 기피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유일한 답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9월 18일 이태한목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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