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 고등부 학생들이 수련회를 하고 있는 곳을 잠시 들렀습니다. 여러 집사님들이 수고 하셨는데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고 저를 비룻하여 몇몇 집사님들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분이 요즘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세상을 바꾸는 15 분’이라는 프로그램 내용 중 하나를 모바일에 담아와서 틀어 놓았습니다.
그 강의 내용은 한 대학 교수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아버지와의 갈등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부자지간에 전혀 소통이관계로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조금씩 성장을 하고 사회생활과 결혼을 하면서 아버지와의 갈등이 결국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어색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사랑을 하려고 의지적으로 노력을 하다보니 이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많이 회복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것처럼 자신이 철이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아주 중요한 한마디를 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한번은 자식이 주는 용돈을 받아 들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등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가끔씩 자식 행세를 한답시고 의무감에서 용돈을 드리곤 했고 아버지도 그용돈만 받고 도망가듯 사라졌는데 그날 따라 용돈을 손에 들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등이 보이면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그래서 이해가되고 이해가 되면서 소통이되고 아버지와 아들은 피붙이 일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통과 이해가 없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강의 였습니다.
그 사람이 이해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그 사람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혹 그 사람의 앞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 내가 타인의 앞만 본다면 여전히 이해도 소통도 어렵습니다. 내가 이웃의 앞만 본다면 그 이웃 역시 나의 앞 밖에 볼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사람의 등 뒤를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이웃의 뒷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랑도 시작됩니다. 사랑하면 이해가 되고 소통이 됩니다. 한해가 뉘엇 뉘엇 저물어가는 11월 말입니다. 누구의 등뒤가 보입니까? 이 해가 다 기울어지기전에 그 사람의 등을 보듬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