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

타인은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

총회와 선교사 대회를 오가느라 분주 했지만 짬을 내어 처가에 잠시 들렀습니다. 처가 식구들을 볼겸했지만 아흔이 넘은 어머니(장모님)를 뵙기 위함이 우선이었습니다. 처가집이 아파트 19층인데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탔습니다. 이 학생이 저희 부부를 보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아주 공손히 인사 하는거였습니다. 저희는 너무도 신기하고 뜻밖이어서 응겹결에 “으응-안녕” 엉거주춤 답례를 하였습니다.

왜냐면 처음 보는 학생이었고,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도 요즘에도 저런 착한 학생이 있나 싶었기 때문입 니다. 처형에게 물어보니 같은 라인에 사는 사람들 끼리는 서로 몰라도, 처음 보아도 인사를 하며 살자고 반상회 때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학생의 부모가 딸에게 말했겠지만 저는 부모의 말을 듣고 그대로 순종한 그 학생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다”라고 미치 앨봄이 ‘에디의 천국’에서 말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세월호의 참사로 한국사회에 새로이 생겨난 트랜드는 “의리” 있게 살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연예인은 대출을 받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성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의리를 실천한다는 뜻에서 말입니다. 한국사회는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포함) 그동안 ‘의리’와는 먼 ‘이기적’으로 살아왔고 그것이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고착되어버린 것인데 세월호 참사로 전화 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미치 앨봄의 말대로라면 오늘 만난 버스기사가 우리 삼촌일 수도 있고, 지나가다 마주친 학생이 내 조카일 수도 있습니다. 뽐내듯 커피를 뽑아주는 바리스타가 우리의 고모일 수도 있고, 거리를 지나는 행인이 내 누님일 수도 있고 공원을 느린 걸음으로 걷는 노 부부가 우리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고 용서하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타인은 남이 아니라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이니까요. 가족에게 의리없이 대한다면 더 이상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갈보리 공동체도 지금보다 더 풍성하고 가득한 의리 있는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우리는 타인이 아니라 가족이니까요.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