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주간, 한국에서 주목의 대상이 된 인물은 프란치스코 교황일 것입니다. 언론들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그가 타는 소형차, 심지어는 침실 크기까지 사람이 아닌 무슨 신인양 요란스럽게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또한 교황의 소탈 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교황이 차를 멈추고 갓 돌을 넘긴 아기의 얼굴을 감싸고 볼에 입을 맞췄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위해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이동수단으로 준비돼 있던 헬기 대신 KTX를 이용한 것을 두고 “기차를 타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600 CC 소형차를 탔고 여덟 번이나 차를 멈춰 세우고 시민들과 진한 인사를 나누었고 방탄유리 없이 손잡이만 설치된 차를 이용하는 것은 “대중과 가까이 접촉하려는 그의 바램의 표현이다”며 과연 서민적인 교황이라고 극찬하며 언론들은 경쟁하듯이 앞 다투어 치켜세웠습니다.
저는 교황의 이런 행동을 폄하 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언감생신 제가 무엇이라고 그 높은신(?) 분을 감히 비판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가지 유감인 것은 교황의 말 한마디 한 마디, 하나하나의 행동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는 해도, 소탈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윤리요 도덕이지 복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황도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일 뿐입니다.
그가 4박 5일간의 일정에서 강론이나 연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를 모 방송국에서 조사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 1위가 ‘사랑’으로 166번, 두번째는 ‘한국’으로 120회, 공동 3위는 ‘마음’과 ‘사람’으로 101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오신 분이, 이땅에 복음을 전하러 오신 분의 입에서 예수라는 말은 눈 씻고 보아도 없습니다. 성령이라는 말이 전무했습니다. 이래도 되는건가 고개가 갸우뚱거려집니다.
사람들은 교황의 언행에 열광하며 교황이 사회를 치료하는 만병통치자처럼 교황이 오면 저절로 평화가 오고 저절로 인간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들뜬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교황의 인간미에 매료 될수 있겠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인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예민한 영적인 분별력으로 현실을 통찰 할수 있어야 합니다.
소외되고 가난한자를 위하는 언행으로 뭇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연민의 정을 느낄만 할 만한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복음이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복음만이 생명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