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큰 길에서 갑자기 경찰 사이렌이 울린다. 남편은 “또 걸렸다, 또 걸렸어, 아니 왜들 과속을 하는 거야?” 전같으면 “그러게요.” 하고 맞장구 쳤을텐데 나는 못 들은척 나가 겨울비가 간간히 떨어지는 뒷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다.
얼마 전 장보러 나서기 전 습관처럼 우체통을 열어 보았다. 우편물이 하나 있었는데 내 앞으로 온 과속 벌금 통지서였다. 찍힌 사진속에 희끄므레하게 웃고 있는 운전자의 모습이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번호판은 내 차가 맞다. 액수를 확인한 후 깜짝 놀라서 되들어가 달력을 보고 날짜를 짚어본다. 남편은 아직 안 갔어? 묻는 듯 쳐다보는데, 못본척 하고 아예 탁상용 달력을 들고 나온다. 차속에서 시간과 장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아! 맞다. 가슴이 쿵소릴 내며 떨어진다. 그 때 좀 달리긴 했지만 이렇게나 많은 벌금이 나올 줄이야.
그 날 그 길은 전형적인 뉴질랜드의 봄날씨로 지루한 겨울비를 견뎌낸 봄꽃들이 한껏 부풀어 있었고 곧게 뻗은 길 양쪽으로 이름 모를 가로수들이 한꺼번에 꽃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가끔 나를 불러내주는 친구가 달리면서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을 웃고 떠들고 했었다. 몇번 사양끝에 나왔는데 나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기분 좋은 하루였었는데, 그 길에 카메라가 있었나보다.
남편에겐 비밀로 할 속셈으로 곧바로 지정된 은행으로 가서 결코 적지 않은 벌금을 내버리곤 속을 끓이고 있었다. 그 액수면 퍼머를 한 번은 할 수 있었고, 아니면 쌀 한포대는 살 수 있을 텐데, 또……그 벌과금은 한동안 나를 괴롭히며 생활속에서 수도없이 산수를 하게 했었다. 그 일이 흐릿해질 즈음 남편이 외출에서 돌아온 나를 방으로 부른다. 그리곤 편지 한 통을 내보이며 이게 말이 되느냐며 보기 드물게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주가 셋씩이나 되는 할머니가 과속이라니, 다른 실수는 몰라도 과속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야” 면서…그 편지에는 당신에게 벌과금 고지서를 보냈었는데, 안냈으면 빨리 내고 냈으면 됐고…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할머니는 과속도 못 하나 뭐. 그리고 그 길에 CCTV가 있는 줄 알았냐고.” 당치도 않는 변명을 눈물과 함께 쏟아내니 남편은 어이가 놀러나간 표정으로 말도 못하고 쳐다만 본다. 아마도 염치없음과 그 동안 감추어 오면서 겪었던 마음고생이 억울해서였던 것 같다. 아니 실패한 완전 범죄의 허망함일지도 모르겠다. 진작 고백했으면 어깨 토닥이며 오히려 위로하고 속상한 마음을 함께 했을텐데…
쇠스랑에 찍혀 나오는 뿌리채소처럼 묵은 후회들이 끌려 올라오는 잠이 안오는 밤이 있다. 수십년씩 묵은 크고 작은 잘못도 그 분은 회개했느냐? 안했으면 빨리 하고 했으면 됐다…하지 않으시고 무던히 참고 기다려 주신다. 이러기에 이 나이에도 저 깊디깊은 우물속 같은 옛날의 소소한 잘못까지도 되돌아 볼 수 있는 때를 주신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나이들며 밤잠이 줄어든다는 것 또한 지난 시간을 반추해 보라는 그 분의 계획이 아닐까 싶다.
이경자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