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석 달 전 어느 수요일이었습니다. 수요 저녁 예배를 준비하면서 기도 순서인 한 성도에게 전화했습니다. 본인이 기도 차례임을 알고 계신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예배 기도 차례임을 알고 계시죠?” 제가 물었고 “예 알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10분 전에 오셔서 준비하세요.” 말씀드리니 이내” 약속이 있다”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기도 차례임을 아시면서 약속을 잡으셨습니까?” 했더니 “기도인 줄 알았기 때문에 약속을 잡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의아해하는 저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셨습니다.
기도는 해야 하는데 도저히 대표 기도를 할 자신이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서 예배를 안 가기 그렇고 차라리 약속을 잡아 나가버리자 그래야 자신에도 하나님에게도 덜 미안할 것 같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니까 기도 내용을 적어 오셔서 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적어서 하기는 하나님께 죄송할뿐더러 자기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면서 열심히 믿음을 키워서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통화 후에 곰곰이 그분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기도 차례인 줄 알면서 의도적으로 약속을 정한 것은 분명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 안타까움과 함께 충분히 이해와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신앙상태에 머무르거나 체념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 신앙을 성장시키겠다는 마음은 분명 그 성도의 신앙의 자존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살이에서 자존심이 상할 때를 종종 경험합니다. 그래서 분해 하기도, 억울해 하기도, 자존심 상하게 한 대상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비해 우리 신앙의 자존심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지? 내 신앙과 내 믿음의 자존심은 없어도 별로 분냄⑵도없이 얼버무려 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신앙의 자존심을 생각하고 세워봄이 어떻겠습니까? 집사님 이제는 기도하실 수 있겠죠?
이태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