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때가 있다. 이유인즉 새롭게 알게 된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신앙생활 쪽으로 화제가 모아질 때가 있다. 그분들로부터 “혹시 교회에 나가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주저 없이 “네 교회에 나갑니다 하지만 아직 초신자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분들과 헤어져 아내와 둘만 있게 되었을 때 아내는 “자기가 어떻게 초신자야, 자기는 초신자가 아니야. 그리고 명색이 안수집사가 그렇게 말하면 돼?” 라고 핀잔을 준다.
속된말로 일요일에 심심해서 이민 온 다음 해인 2002년도부터 아내와 애들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듬해에 세례받고 몇 년 뒤 서리집사가 되고 또 몇 년 뒤 안수집사 직분을 받는 그야말로 속전속결의 신앙생활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그야말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교회생활이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하면 할수록 마음 한구석의 공허함과 허탈함으로 인해 마음 아파할 때가 많았다.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시작한 신앙생활, 말씀이며 기도며 또 찬양이며 어느 것 하나 내안에 성령 하나님의 뜨거움이 함께 하는지에 항상 의문부호를 달게 된다.
그리고 간혹 나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곤 한다. 나는 주일이 되면 그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른 생각 없이 교회에 발길을 들여놓고 경건하고 은혜롭고 축복받은척하는 무늬만 신자인 나일론 신자는 아닌가? 아니면 발목 아래만 살짝 담가두고 발목 위의 신체는 항상 세상과 접하여 세상을 사랑하며 즐기며 살아가는 발목 신자(?)는 아닌가?
열심히 교회는 다니는데 변화가 없고 뜨거움이 없고 은혜로움이 없고 감동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의미 없는 신앙생활의 연속은 아닌가에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된다. 변해야 한다. 정말 변해야 한다.
갈멧산에서 엘리야 선지자 홀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의 850명과 대결할 때 그저 손바닥만한 징조밖에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폭포수 같은 비를 내리게 하셨던 하나님임을 믿고 하나의 마음으로 다가설 때, 진실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엘리야처럼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폭포수 같이 넘쳐나는 비를 내리게 하여주시고 메말랐을 때 촉촉한 단비를 내려주시고 추울 때 성령의 불을 지펴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하면 나의 가정과 내주변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음을 알고 이제는 의미 없는 발목 신자에서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가 오늘도 감사 내일도 감사할 줄 아는 하나님의 귀한 아들로 살아가 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이동술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