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합니다. 먼저 4 복음서의 부활 기사는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 누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 근처라 하고, 요한복음에서는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나타나셨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무덤에서 말을 전해준 사람들이 다르다고 합니다. 즉 마가복음에서는 한 젊은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젊은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는 무덤에 한 천사가 있었다고 하고, 요한복음에서는 두 천사입니다. 이와 같은 모순이나, 다름이 있기에 부활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모순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어떤 사건에서 표현의 문제이고, 사건의 외관상의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지, 그 사건 중심 내용에 관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에서도 사람들이 그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기록될 수 있으나 부활이라는 사건은 그 자체는 분명하고 불변한 것입니다.
왜 마가복음에는 한 젊은이 가, 요한복음에는 두 젊은이로 되어 있습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마가복음은 주후 60년경에, 요한복음은 주후 1백 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이야기가 40년간, 전해지고 또 이야기되었다면, 도중에 그 이적에 대해서 점점 구체적이 된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일은 인간 본성의 발로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는 불변합니다.
은행가 제임스 호프 심프슨경은 수표의 싸인에 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같은 사람에 의해 싸인 되었다고 생각되는 두 장의 수표를 손에 넣고, 이것을 햇볕에 비추어 보고, 받쳐보고서, 전혀 다름이 없고 1mm도 어긋남이 없을 정도로 두 개의 싸인이 일치될 경우면, 그 중의 하나는 위조수표라고 믿어도 틀림없습니다. 누구도 자기의 이름을 똑같이 두 번 쓸 수는 없습니다.
두 학생이 꼭 같은 답안을 제출했을 때는 이것을 진실이 아닌 공모나 합작인 것으로 확신하게 됩니다. 이야기란 각각 다른 사람에 의해 전해질 때, 반드시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 다름과 모순이야말로 진리라는 증거입니다. 부활의 이야기가 사람의 창작이었다면, 계산이 조금도 어긋남 없게 맞추고 조화시켰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근본적으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그 진실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모순 때문에 부활을 의심하거나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