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이라는 기독교 고전을 학창시절에 읽어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함께 성경 다음으로 사랑 받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천로역정은 17세기 영국에서 활약한 복음전도자인 죤 번연(John Bunyan, 1628-1688)의 작품으로 원래 영어 제목은 “The Pilgrim’s Progress in the similitude of a Dream” 입니다. 번역하면 “꿈에 비유해서 쓴 순례자의 편력” 이라 할수 있는데 우리 말은 한문의 제목을 그대로 옮겨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 합니다. 천로(天路)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말하며, 역정(驛程)은 거쳐 온 길을 뜻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명한 기독도가 해석자의 집에 도착하여 큰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하녀가 들어와서 빗자루를 가지고 막 방을 쓸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납니다. 쓸면 쓸수록 먼지가 계속 일어나지만 하녀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계속 빗질을 합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거기에 물을 끼얹습니다. 그러니까 먼지가 다 잦고 깨끗이 쓸렸습니다.
여기서 큰 방은 ‘인간의 마음’이고 먼지는 ‘죄’, 빗자루는 ‘율법’(도덕)입니다. 빗자루로 쓸수록 먼지는 계속 나옵니다. “착하게 살아라” “올바른 사람이 되어라”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하고 싶지 않아서 갈등만 생깁니다. 그러나 물은 복음입니다. 복음에 의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우리의 마음이 밝아집니다. 도덕이 실패한 곳에서 복음이 시작됩니다. 인간의 윤리가 실패한 곳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윤리가 필요 없고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와 도덕으로 즉 빗자루로는 우리 마음의 방에 있는 먼지인 죄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불신자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복음과 도덕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단순히 도덕이나 율법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는 복음이 아닙니다. 도덕도 복음이 아닌데 윤리와 도덕을 복음으로 잘못 이해하여 윤리와 도덕적인 삶이 곧 복음으로 사는 것이라 여겨 이 정도의 삶이면 괜찮게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얻은 감격을 가지고 성령님에 의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이요, 삶입니다.
이태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