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도를 마치고 아버님 공항 모셔다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아버님 댁으로 올라갔다. 현관에 들어서기 전 마침 창 문 안으로 아버님의 모습이 보였다. 작은 벽 거울 앞에 서서 정성스럽게 넥타이를 매고 계시는 모습 . 문득 이 평범 한 모습이 왜 그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느껴지는지….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시면서 예배 때 마다, 심방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저렇게 작은 거울 앞에서 단정히 넥타이를 매셨을 텐데 이제 칠순의 나이에도 흐트러짐 없이 항상 하시던 대로 그렇게 성실하게 살고 계신 것이다.
나는 과연 아버님처럼 그렇게 일관성 있게 묵묵히 내 길을 가고 있는가? 어린 시절, 특히 중, 고등학교의 사춘기, 반항과 방황의 시절 아버님은 내게 너무나도 왜소하고 무력한 모습이셨다. 반 지하 10평 정도의 조그만 방 2개짜리 전세방을 전전할 때나 매서운 겨울 추위 중에 적합한 집을 구하지 못해 콘크리트 찬 바닥, 그 시멘트 냄새가 진동하는 가게 건물 한 칸에 야전침대를 놓고 생활한 적도 있었다. 그 때 아버님은 세상의 거세고 모진 현실에서 적잖이 당황하고 힘들어 하셨던 것 같다.
세상살이에서 그렇게 왜소하게 느껴졌던 아버지가 십자가 앞에서는 당당하고도 큰 모습이었음을 발견하게 것은 어느날 우연히 참석하게 된 수요 밤 예배에서였다. 작은 개척교회의 수요 밤 예배라는 것이 겨우 교인 10여명을 앞에 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이때도 아버님은 그 큰 키에 양복을 단정히 입으시고 설교를 하시는 중 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에서 그렇듯이 강대상 뒤 벽에 나무 십자가가 갑자기 부각 되면서 “아! 아버님의 뒤에는 십자가가 있구나!” 라는 탄성이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십자가 앞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기도를 하시는 아버님, 그 모습은 더 이상 작은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쓰임 받는 큰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타의에 의한 예배,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부정적이다. 하지만 절대로 내 아이들에게 자기의지로 원하지 않은 한, 예배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주일 아침마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예배를 드리는 이 현실이 얼마나 우스운 신앙의 아이러니인가? 하나님의 뜻을, 그 섭리를 누가 감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변함없이 일평생 해 오신 그대로 넥타이를 매시는 아버님 처럼 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묵묵히 내 길을 갈 일이다.
그래서 먼 훗날 나의 자녀들이 그 어떤 나의 일관성 있는 모습에 감명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나 또한 그러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
김경구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