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12시 그러니까 토요일이 시작된 찰라에 전화가 왔습니다. 성도 중 한 분이 몸이 좋지 않아 급히 엠브란스를 불렀는데 병원에 갈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급히 와 달라고 해서 즉시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앙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건강의 어려움, 자녀들 때문에 속 썩을 때도 있고, 비즈니스의 고전으로, 인간관계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신학용어로 “The Permissive Decree(허용하시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당하도록 허용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참 어렵고 괴로운 일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고난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 고난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그 고난을 견뎌 내기는 더 힘듭니다. 한탄과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 속에 빠져 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고난이 닥쳐와도, 그 고난 속에 뜻이 있다. 고난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 그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고난을 극복하게 됩니다.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고난을 통해 나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다 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음의 비밀을 아시는 하나님, 내 인격의 비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고난을 통과하는 가운데 내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 주시고, 나타내 주시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고난과 시험을 당하기 전에는, 내 진면목, 생얼(민낯)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닥치고, 위기가 닥치면. 내 본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꿈꾸는 한해의 길목에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여전히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신음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해에는 병상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치유의 하나님 저들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태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