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교회는 이래야 해

그래, 교회는 이래야 해

어느 교회에 노숙자들이 한 두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교회는 당회를 열고 찾아오는 노숙자들을 어 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한 끝에 매일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온 한 노숙자가 “그래 교회는 이래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식사를 대접하는 곳일까요? 틀렸습니다. 교회는 식당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무엇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인지, 보람인지 육의 눈을 가지고 물질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닌 영안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심어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탄 헤밍웨이는 입 에 엽총을 물고 자살을 하면서 “이 의미 없는 인생의 행진을 접는다”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던 헤밍웨 이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성공과 행복을 깨닫는 영적인 통찰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노벨상을 받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도 어느 한 곳에는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두지 못해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 교회가 무엇인가를, 어떤 곳인가를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인 동시에,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교회가, 무엇이 성공이고, 보람인지를 그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 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이 교회 공동체라는 터 위에 세워져 있기에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말하며,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저들의 거울이라는 것입니다. 거울인 우리 앞에서 저들이 자신을 비추어 보고 인생의 의미를 통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거울이 된다는 것은 마냥 칭찬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단 하나뿐인 인생이 내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살이는 신중하고,조심스러우며,영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 역시 때로는 현실과 영적세계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연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무엇이 인생의 성공인지, 행복이요, 보람인지를 알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인생의 성공이 소유하고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닌 영적 세계를 바라고 소망하는 데 있음을 지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철학자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죽어가며 말했습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