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으로 지금은 대림절 기간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전의 4주간을 말하며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절기상의 기간은 4주간이지만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을 자기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와 관련된 예언들이 이사야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본다면 7백여 년을 기다린 셈이 됩니다.
아브라함부터 그 기점을 잡으면 무려 2천 년입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포로기와 식민 통치기의 힘든 세월의 무게 탓에 더 간절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감람산 쪽에 수많은 무덤과 묘비들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성전의 동쪽으로 메시아가 이 문을 통하여 오시기 때문에 가장 먼저 부활하기 위해서 그곳에 무덤을 세웠다고 합니다. 오늘날 그 문은 큰 돌로 막혀 있는데, 이슬람교도들이 메시아가 와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첫 번 성탄에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마라나타 ‘곧’ 주여 오시옵소서.” 고백하며 예수님을 기다렸고 지금까지 교회는 두 번째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인생은 기다림입니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고, 자기 짝을 기다리고, 자기 목표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리는 순간은 답답하고 더디가는 것 같지만 실상 기다림은 행복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인생, 어쩌면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을 때의 삶은 무의미와 허무의 세월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인생에 수없이 다가온 성탄이었지만 이번 성탄은 처음 맞는 듯한 설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다 못해 터 진 주머니로 손을 녹이 며 새 벽 송을 부르던 그 옛날, 그 시절처럼 성탄을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이국땅 한 모통이에 서서 비껴가지 못하는 세월 탓에 다른 것은 다 적응이 되어가지만 한여름에 맞는 성탄은 여전히, 새로 산 옷을 처음 입는 것처럼 어색함은 빡빡머리 위로 스쳐 가는 찬바람을 마다치 않고 기다렸던 그때 그 시절이 때 묻지 않은 성탄을 기다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태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