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보다 진리

식혜보다 진리

30인용은 족히 되는 큰 솥을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 집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어서 물으니 식혜를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즐기지 않는 식혜를 남편을 위해 만들고 있구나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잠시 였습니다.

식혜를 만들면서 한쪽에는 Gas 불에 큰 찜통(?)을 올려놓고 행주를 삶습니다. 저는 그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고는 이내 서재로 올라와 주일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몇 시간이 흘러 저녁 무렵이 되었습니다.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여전히 식혜를 만드는 큰 솥은 바닥에 그대로 있고 아까 행주를 삶던 찜통에 행주는 없고 누리끼리한 물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버리기에는 무거울 것 같아서 집사람을 위한다는 기특한 생각(?)으로 머리를 감고 있는 아내 에게 “행주를 삶은 물 버릴까?” 물었습니다. 샤워기 물소리 사이로 “응”하는 소리가 들려 나도 참 괜찮은 남편이지 속으로 자화자찬 하면서 싱크대에 쏟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밥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 글쎄 그 물은 행주를 삶아낸 땟물이 아니라 다 된 식혜를 다른 통에 옮겨 한 번 더 끊인 다음 식히려고 놓아둔 식혜 였습니다. 얼른 통을 바로 세웠지만 어느 정도의 식혜는 이미 배수구를 통해 저만치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샤워기 물소리에 잘못들은 탓입니다.

아내에게 이실직고하자 한심스럽다는 듯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식혜인지 행주 삶은 물인지 그것도 분간 못하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했지만, 유구무언이 상책이었습니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설거지를 자청했습니다. 설거지를 마치려는데 창가에 놓아둔 두 개의 꽃 화분에 물이 모자란 듯 보였습니다. 딸 아이가 키우는 꽃인데 간혹 저에게 “아빠 이 꽃에 가끔 물 좀 줘” 하던 딸의 말이 생각나 자신 있게 물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조화입니까?

하나는 생화고 하나는 조화인데 저는 두 개다 생화인 줄 알고 물을 부었던 것입니다. 딸과 아내는 어떻게 분별력이 그렇게도 없느냐고 쌍으로 몰아세웁니다. “조화가 생화처럼 보인게 잘못이지 내가 잘못인가”라고 겉으로 내뱉기에는 이미 전과자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진리만 제대로 구분하는 목사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는가? 스스로 위로하며 다시 책상에 앉았습니다. 물인지, 꽃인지 몰라도 진리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데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교운을 뼈저리게 깨닫는 그렇게 하루가 길게 지나갔습니다.

이태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