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젠가 한 일을 우리가 정작 잊고 있는 사이에 우리가 한 그 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면 스스로 조심스럽게 된다. 기독교인이라고 명찰을 달거나 Badge를 달고 다니지는 않지만 이미 우리는 마음으로 표시를 하고 다니고 있다.
이런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나 상대하는 자세에서 교인으로서의 풍모가 들어난다. 우리가 주고 받는 평범한 말 속에 생명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무심코 흘린 말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생명을 싹트게 할 지 모른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을 다른 사람과 주고 받거나 신앙을 권유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신앙이 없거 나 약한 사람에게 남겨주는 말 한마디가 언 젠가 생명의 싹이 될 수 있다. 작은 일에 정직함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다. 욕심의 탓으로 순간 마음이 흔들리거나 작은 일이라고 하여 가볍게 보지 않고 정직을 지킨다면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너희는 재판에서든지 저울질 할 때든지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레위기 19:35-36) 세상의 일로 저울질 할 때에 공정한 추를 사용하라고 하심은 우리의 마음부터 정직하기를 요구하시고 계신 것이다.
마음이 바르면 정확한 추를 스스로를 들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마음을 먹을 때에도 한가지 일 것이다. 드릴까 말까… 이런 주저는 어쩌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마땅히 들어야 할 추를 바로 드는 대신 우리의 이해관계를 재 면서 이 추 저 추를 만지작거리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을 미리 경계하신 것이리라.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내민 자그마한 도움의 손길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기도할 때에 나의 가족 나의 교회뿐만 아니라 한 때 잊었던 사람을 위해 기도 함은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역사하실 수 있을 것 이다.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은 무한하시기 때문이리라.
다람쥐는 수 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산다고 한다. 자기가 먹으려고 땅 속에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를 숨겨 놓고는 하지만 곧 어디 있는지를 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덕택에 나무는 여기 저기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언젠가 남긴 믿음이 꽉 찬 말이나 행동이 예상하 지 못 한 곳에서 뜻 밖의 일을 이룰지 모른다. 누군가 심어 놓은 뽕나무는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철 따라 열매를 맺고 있었지만 세무 공무원인 삭개오란 키 작은 사람을 올려 영혼을 새롭게 하는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
다람쥐와 뽕나무… 주님을 본 받아 사는 우리가 언젠가 뿌린 씨에서 믿음의 나무가 여기 저기 뿌리를 내리고 기도로 여기 저기 심은 뽕나무가 아직 어두움 속에 갇혀있는 영혼들을 올려 변화의 눈을 뜨게 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유승재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