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선교지를 다녀와서, 이규임권사

9월 5일 안성 수양관에서 열린 시니어 선교한국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것으로 3개국 선교 탐방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미얀마 양곤/ 김종곤, 최진자 선교사

최초 미얀마 한인 선교사,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며 헌신하시는 현장이었다. 공산 국가이며, 불교 국가로 방문객들은 반드시 호텔에 만 머물러야 하는데, 우리 부부는 선교사님 숙소에 머무를 수 있었다. 또한 선교사님 차량은 고속도로 통행료도 면제되는 혜택을 받고 있었다. 두 분 선교사님의 수고와 헌신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학교를 통해 현지 사역자를 배출하여 교회를 세우고, 고아원을 설립하여 버려진 60명 원생들을 신앙으로 잘 성장하도록 양육하고 있었다. 기저귀 찬 아기부터 18세 청소년까지, 공산국가에서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두 분을 통해 세심하게 인도하심을 볼 수 있었다. 향후 영재 학교를 설립하여 신앙과 교육으로 미얀마를 깨우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장성규 선교사 (장 클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독일과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마치고, 받은 재능인 음악을 통해 하노이에서 선교하는 분이다. 앞을 볼 수 없는 미혼 남성으로 많은 불편함이 있지만 씩씩하고 담대하며, 취미가 여행인 이 분은 숙소에서 피아노, 드럼, 기타, 클라리넷을 가르치며 음악을 접할 수 없는 어려운 형편과 환경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복음 안에서 꿈과 희망을 주고, 동남아에 음악 영재학교를 세우려는 비전을 갖고 있다.

필리핀/ 김자선, 강정인 선교사

금년이 4번째 방문인 뚜게가라오에 신학교 개원에 맞추어 도착하였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현지 교인들, 신학생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개원 예배를 드리고, 선교사님들과 예배를 위해 타 지역으로 차와 배를 타고, 말도 타며 복음의 불모지에 선교사 두 분, 현지 통역 두 분, 6명이 함께 전도를 나갔었다. 차로 2시간, 걸어 한 시간 논과 뻘을 지나 불볕의 한낮에 도착한 곳은 옛날 우리의 원두막보다 못한, 풀로 얼기 설기 올린 지붕에 대나무로 엉성하게 이은 움막 10채 정도 있는 마을이었다.

한 집에 10명 정도의 가족들이 생활한다는데 불에 그슬린 항고 두어개가 유일한 식사 도구로 처마에 매달려 있을 뿐 물도, 쌀도, 입을 것도 없는 걸레와 다름없는 이불 두어장이 전부였다. 복음을 전하며, 듣고 있는 그들을 뒤에서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복음을 들어보지도, 알려주는 이 없는 무지몽매한 암흑의 시대에 서양 선교사들로 인해 복음과 교육의 기회가 나에게까지 전해졌는데, 그 빚을 지금 갚고 있구나 싶었다. 뚜게가라오 본 교회 성도들도 복음이 전해지던 40여 년 전에는 몽둥이와 허리에 찬 칼을 휘두르며 여성 선교사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던 자들이었는데 지금은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으니 감사 감격할 뿐이다.

복음이 어떻게, 왜 전해 야만 하는지, 하나님께서 오늘도 기다리고 계심을 깨닫게 하신다. 이를 통해 신앙의 배부름으로 인해 나태해지는 나를 돌이키게 하시고, 주님이 삶의 답이며 이유임을 알게 하시고,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신다.

이규임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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