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병실에서

“Not Yet?” 밥이 아니면 주식으로 치지 않던 밥만 좋아 하던 내가 일주일을 굶고 지른 소리치곤 너무 커 나도 놀랐단다. 솟구쳐 튀어 오르듯 일어난 나를 지키고 있던 간호사가 다독여 놓인 후 어깨를 쓰다듬듯 달래더군.

회복실은 온통 푸른 형광 빛으로 보였고 그 앞에서 걸어 다니는 제 복 입은 이들은 수초처럼 흐느적거리고 알 수 없는 말들을 웅얼웅얼하고 있었어. 이 세상에 연결되지 않은 어떤 사차원의 세계. 그리곤 다시 혼곤한 잠속으로… 병실로 돌아오니 어머니와 함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더군. 식을세라 겹겹이 싸온 스테인리스 주발 속의 녹두죽, 그리고 손수 담은 오이지가 알큰하게 무쳐 담겨 있었어. 어머니의 그렁한 눈물과 함께 삼키는 몇 숟갈의 죽은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칭찬이었단다.

가끔 홀로 깨어 있는 밤이 행복할 때가 있지. 시간을 알 수 없는 이 미명은 내가 수술실로 들어가던 그 오늘일까, 그때의 내일일까. 누군가 그랬어, 새벽은 영혼의 시간이라고. 꿈 틀대며 똬리를 틀어대는 온갖 사념들이 칡뿌리처럼 파고들더군. 공포에 질려 아직 이냐고 묻고 겅중거리는 내게 그분은 조용한 톤으로 “그래 아직 이야” 그리곤 돌 주머니 떼주고 반창고 붙이고 등 밀어 나를 내 보내셨지.

세월을 아끼지 않은 죄와 남겨주신 많지 않은 시간 앞에 한없이 작아지며 흩어지려는 나를 겨우 붙들고 있었어. 평생 내 나름으로 움켜쥐었던 세월을 스스로 놓아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 그렇게 희부연한 새벽은 쉽게 물러가지 않고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고통과 같은 불면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네. 꿈이라도 잡아야 흩어지려는 나를 더 빨리 추스를 텐데…

사람의 몸은 심장이 멎을 때 죽지만, 사람의 영혼은 꿈을 잃으면 죽는다 하데. 그래 서 어떤 이는 25세에 이미 죽었고 다만 장례 를 75세에 치른다 하더군. 난 나의 꿈을 찾을 거야. 반세기 전쯤 덮어 두었던 꿈의 샘물을 찾아 떠날까 해. 어디쯤인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곳엔 아직도 깊고 찬 샘물이 솟고 있을 것 같아.

능소화 줄기 엮어 낡은 두레박 줄 바꾸고 보름달 반으로 잘라 두레박 만들고 켜켜이 쌓인 솔잎 걷어내고 나면 가끔은 진달래 꽃잎도 담겨 올라오지 않겠니? 난 더 열심히 나의 마음을 글로 퍼올릴 거야. 그것이 그분을 기쁘게 하고 영광 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난 더 없이 행복할 테지. 그리고 내 글을 읽고 어떤 이가 사뭇 미소 지을 수 있고, 늘 바쁜 어떤 이가 한 숨 돌리며 신들께를 고치고, 힘들어 고개 숙인 어떤 이가 잠시 푸른 하늘을 올려보며, 세상 속의 치부를 위해 더하기 빼기를 열심히 하던 어떤 이가 잠시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 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행복할 거야.

그리고 잠시 건강을 잃고 있는 어떤 이가 희망을 안을 수 있다면 세월을 아끼지 않고 살아온 나의 죄 가 조금은 면죄되지 않을까?썩은 돌 주머니와 바꿔나가는 꿈 주머니, 이 만큼 이익되는 일도 없지 않을까 싶어. 그분은 참으로 오묘하시지 않니?

꿈을 갖은 사람의 발걸음은 부지런하다 했다. 이른 아침 내 너의 병실을 찾아갔다 되돌아 왔다. 내 너를 만나 무슨 말을 하랴, “나 오늘 퇴원해” 이렇게 말하리? 난 너와의 첫 대면 이 병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기도하곤 해. 속히 돌아와 우리 모두의 곁으로. 실록같은 푸름으로, 푸른 대나무처럼 곧고 늠름하게… 가드레일 잡고 서 있는 맨발 위로 후두두 눈 물방울이 떨어지더라.

너를 두고 나가는 안쓰러움과 미안한 할머니의 마음일 거야. 하지만, 너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기도며 눈물이 도 하지. 꿈을 잃지 마라 칠십을 눈앞에 둔 할머니도 아픔을 꿈의 배낭으로 바꾸어 매는데 너를 기다리고 있는 너의 소우주를 잊지 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 테니. 기섭아, 기섭아,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마.

이경자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