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감사

일상에서의 감사

남편이 코를 심하게 골며 잠든 모습을 보니 오늘도 일이 엄청 힘이 들었나 봅니다. 이번 주는 청소일에 이삿짐일 그리고 건축현장 막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해본 주입니다. 하지만, 렌트비 내고 나면 빈손에 가까운 현실, 왼쪽 얼굴엔 대한민국 지도만한 기미가 오늘따 라 유난히 검게 보여 녹녹치 않은 이국 생활의 현실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여기 온 지 며칠 되었다고 이렇게 서둘러 일을 해야 하느냐고, 어학 공부 좀 하다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지만, 남편 귀엔 제 말이 들리지 않 는 것 같습니다.

두 딸과 철없어 보이는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책임 이 그를 사지로 내모는 듯하여 못내 마음 한구석이 찡합니다. 반면 그의 아내 는 지저귀는 새 소리에 웃음 짖고, 푸른 잔디와 싱그러운 나무를 보며 흐뭇 해하고 크고 작은 집들을 보며 그 다양한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아이들과 남편 도시락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예쁘게 폼나게 싸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즐거워합니다. 너무 다른 모습이지요? 우리는 동갑인데 이렇게 다릅니다. 단 5일 만에 하나님께서는 뉴질랜드로 우리 가족을 오게 하셨습니다.

내 오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다가 이제 때가 되었다 싶으셨는지 순식간 에 이곳으로 보내 주셨답니다. 아주 천 천히 움직이는 나라,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눈을 보며 웃어주는 나라, 모르는 사람한테도 친절히 인사해 주는 나라, 작은 것에 감사를 느끼며 사는 나라, 제가 본 뉴질랜드의 첫 인상이었어요.

카메라를 갖다 되기만 하면 어디든 작품이 되는 나라, 그래서 푸근한 고향 같은 나라로 다가왔습니다. 남편에게도 뉴질랜드는 정겹고 편안하며 아름다운 나라였는데 돈을 벌어 생활하기엔 너무도 빡빡한 나라, 하지만 현실과 이상이 다른 나라가 되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남편에게 왜 그렇게 급하게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가지고 있는 돈이 다 떨어져서 일을 시작하면 그때 지금 같은 고생을 해야 하는데 그 땐 얼마나 마음이 바쁘겠냐고 조금이라 도 여유가 있을 때 일을 찾아야 마음이 덜 바쁠 것 같다고.. 저보다 훨씬 속 깊은 얘기를 하는 남편을 바라보니 그 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저의 십자가 크기와 남편의 십자가 크기가 이렇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합니다. 잠든 남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남편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철 좀 들라고 이곳으로 저를 보내셨군요. 좀 더 큰 그릇이 되어 남편을 보듬고 나아가 이웃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 고, 삶의 연약한 껍질을 벗고 좀 더 깊이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주시기 위 함이라 믿습니다.

하나님 남편을 긍휼히 여겨주세요. 남편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아시는 하 나님 아버지, 남편의 마음을 만져주세요 어느새 눈물이 흐릅니다. 내겐 오빠이고, 아버지고, 친구입니다. 철없는 아내를 말없이 믿어준 남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하윤이, 윤송이 아빠, 그리고 이런 남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복연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