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또 보내면서

한해를 또 보내면서

얼마 전부터 핸드폰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대들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핸드폰의 여러 option들을 하나도 사용하지 못한 채 그저 수신, 발신 기능만 사용하고 있는데서 내가 BC(Before Computer) 세대임을 새롭게 느낍니다. 한 해의 말미에 서서 밀레니움의 기대보다는 점점 기성세대로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본 그레고리펙의 모습은 로마의 휴일에서 보았던 멋지고 싱싱했던 기자의 모습이 아니라 주름지고 흰 허리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새로움을 나타내는 New의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네오스(neos)입니다. 586컴퓨터가 386보다 네오스하고 아이들은 노인보다 새로운 존재입니다. 이렇게 시간적이고 기능적인 차이에서 오는 새로움이란 단어가 네오스입니다.

또 다른 단어인 카이노스는 난봉꾼으로 지내던 자가 문득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아내와 가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산다면 그는 카이노스한 새로운 존재입니다. 즉 의미에서 그리고 질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것을 카이노스 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새로운 질적인 변화(카이노스)가 없다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늙어 가는 것이요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카이노스는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푹 익어가는 것입니다. 여름 감은 싱싱하지만 떫습니다. 그러나 익은 감은 홍시가 되어 미각을 도취시킵니다.

사람은 늙어 가는 자들이 아니라 익어 가는 자들이어야 하는데 남보다 늙어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어쩐지 더 측은해 보이고 젊었는데도 노티를 내는 사람은 참 불편하게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도 카이노스의 새로움이 없다면 그것은 철없는 어른, Neos 로 인해 겉 사람은 부패하나 Kainos로 인해 우리의 속 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는 법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김성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