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신 하나님

함께하신 하나님

제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파주 적성입니다. 6.25전쟁의 한가운데서 모든 것이 사라졌고, 전후세대인 제게도 보이는 것은 지뢰밭, 군인들과 군부대 그리고 전쟁대비를 위한 시설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농사 지을 땅이 지뢰 밭이라 어린시절 하루 한두끼 먹기가 쉽지 않아 쌀 밥 한번 배불리 먹어 봤으면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 제게 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우리집은 종가집으로 하루의 허기는 해결못해도 하루가 멀다할 정도의 제사는 목숨처럼 지켜야 했습니다. 더우기 수백년 동안 선영을 가꾸고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종가집 종손들은 교육의 혜택도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도 피눈물나는 가난 앞에 버려야 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나무 울타리 너머 이웃 친구집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친구 삼촌이 동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가 바로 찬송가였다는 것을 철이 들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삼촌은 훗날 목사님이 되셨구요.

하나님은 그렇게 소리없이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지금 저는 조상과 부모를 버리고 멀리 떠난 불효자식이 되어 버렸지만 저희 부모님과 다섯 동생들의 삶 속에 변함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도 하고 있습니다.

어린나이에 집을 떠났고, 폐결핵이 걸려 한동안 각혈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립하며 홀로 흘린 서러운 눈물만큼 저는 제 부모형제들의 천국소망을 기도하며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릅니다. 코흘리개 시절 이웃집 친구 삼촌이 가르쳐준 찬송가는 하나님의 임재였음을 믿습니다. 십대가 되어 가끔씩 드나들던 교회도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강원도 철원 철책선 살벌한 군생활동안 박대통령이 돌아가셨고 그리고 저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제 곁에 계셨습니다.

주일예배를 위해 우리부대 병사들을 먼 민간인교회로 인솔하는 군종사병의 임무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더우기 이 아름다운 뉴질랜드는 제 평생 최고의 하나님 축복입니다.

수 십년 간 선생으로서 뉴질랜드 학교 운영자로서 지금도 변함없이 엄청난 시련과 보람과 도전을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이제는 그의 말씀을 조금은 들을 줄도 경외 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동안 제게 주신 눈물과 훈련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귀하게 쓰여 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 아내와 자식들을 통하여 대대손손 하나님을 경배하는 귀한 가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경덕현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