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yber Pass의 예배당

Khyber Pass의 예배당

정선의 정선아우라지 강가에 서서 정선아리랑을 들을라치면 전설 그대로 배타고 결혼식 가던 아낙네들이 배와 함께 수장되어 물속에서 부르는 만가의 애절함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거기서 돌아 나와 봉평의 이효석 생가를 들어가다가 물레방앗간을 잠시 훔쳐 들여다 보노라면 남자 품에 안겨있던 소설 속의 처녀가 화들짝 놀라 옷고름도 채 메지 못한 채 아직 틈 사이에서 눈을 미처 때지 못한 나를 밀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여 온몸에 개방구(전율을 느낄 때 몸의 털이 서는 듯하다는 호남지방의 방언)를 느낍니다.

시간이 나면 이런 저런 곳을 다녔던 이유는 꼭 내가 개띠라서 잘 돌아 다니거나 역마살이 있기 때문이 아니였습니다. 그 곳에 가면 내가 주인공도 되어보고 등장인물들도 만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이곳 Khyber Pass에 있는 예배당으로 예배처소를 옮겼습니다. 예배당 안에 앉으면 그 동안 거쳐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냄새가 의자에서 날 것만 같습니다. 알고 보니 120년의 넉넉한 자태를 그대로 간직한 채 듬직하게 오클랜드의 시간을 몸으로 간직하며 있는 예배당이었습니다. 40대의 중후함과 70대의 후덕함이 성전내부에 가득했습니다. 교회는 교회건물이 아니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이 성전 안에 있노라면 예배당도 ‘보이는 교회’라고 신학하며 배웠던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교회는 교회건물이 아님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배당을 소홀히 하는 것은 ‘내 아내는 사람이지 옷은 아니다’해서 아내가 입고 있는 옷을 찢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의 행복은 물론 행복한 가정에 있습니다. 집(House)은 가정(Home)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숙하는 가족이 Home만 부르짖고 집을 무시한다면 결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을 떠난 누이가 몸서리치게 보고 싶을 땐 책상 속에 있는 누이의 머리 빗과 화장 손거울을 꺼내 쓰다듬습니다. 그럴 때면 ‘고맙구나’하는 음성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예배당을 오며 가며 들르면서 빛 바랜 의자, 칠 벗겨진 강대상,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다 헤진 카페트를 보면서 때론 개방구를 느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너무 감성적이 아니냐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지성을 사용해 신학공부를 할 때에는 그동안 몰랐던 섭리를 깨닫는 기쁨이 있었다면 감성으로 성전 안에 서 있을 땐 하나님과 Skin Contact하고 있는 개방구를 느낍니다.

신학을 하면서 ‘머리는 냉철하게, 가슴을 뜨겁게’ 하라던 교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림이 없음을 알 것 같습니다. 오히여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을 차가워지고 머리는 뜨거워지는 장티푸스 병리현상이 내게 나타나는 것 같아 두려울 뿐입니다.

이민초기 삶의 질고를 모두 갖고 나와 하나님께 풀어 놓았던 유럽인들의 믿음을 120년이 지나 후 우리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 한시도 놓지않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어떤 날은 그냥 한동안 물끄러미 강단만 바라보고 있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 땐 기도 조금밖에 안하고 간다고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아 뒷덜미가 뜨끈뜨끈 합니다. 어떤 날은 갑자기 왜 이런 노래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바라만보..고 있..지….” 유행가에도 진리가 있는 건가요? 입당 예배 날 교우들과 다짐했습니다. 교회 오는 길은 찾기 쉬운데 하늘 가는 길을 모르는 교회가 되지 말자고, 주차할 수 있는 선은 반듯하게 그어져 있는데 새롭게 믿는 성도들에게 비뚤어진 믿음의 선을 그어놓는 교회가 되지 말자고..

예배당 안에 눈을 높이 들어야 보이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하박국 2:20)”

김성국목사